70년 만의 해후: 이응노와 박승무

올해 2023년은 화가 박승무(1893~1980)의 탄생 130주년을 맞는 해이고, 2024년은 화가 이응노(1904~1989)의 탄생 120주년을 맞는 해이다. 동양화가로서 격변의 시대인 한국의 20세기를 함께 통과했지만, 그들이 걸어온 길은 조금 달랐다. 이응노는 동양화의 현대성을 꾀하며 고군분투한 반면, 박승무는 전통 회화를 고수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들은 동료 예술가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교류했다. 이응노미술관에서 8월 13일까지 특별전으로 개최되는 <70년 만의 해후: 이응노와 박승무>에서, 두 화가는 생전 마지막 교류 이후 70년 만에 작품으로 다시 만난다. 총 4개의 전시실에는 박승무의 작품과 이응노의 작품이, 화가의 호의 변화에 따라 나뉘어 시간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전시실을 거닐며, 두 화가의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한눈에 담는다.
 

전통을 새롭게 계승하다, 화가 박승무

어린 시절 YMCA(기독교 청년회)에서 영어와 일본어, 유도를 배우며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박승무는, 그림을 배우던 친구 심묘 김창환의 영향으로 그림을 처음 접하게 된다. 그는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던 큰아버지를 설득하고, 최초의 미술교육기관이었던 서화미술회 화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한때 그는 상해에서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신한청년당과 교류하기도 했다. 그가 상해에서 그린 화조화는 높은 금액에 거래되어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사용되었다. 

이처럼 그는 전통적인 화훼영모화(꽃과 짐승을 그린 그림)와 산수화로 유명했다. 도제식 수련 이후 전통화법에 기반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모색하던 그는 쌀알 모양의 점을 여러 개 찍어서 그리는 기법인 ‘미점준’을 그의 산수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산과 나무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점묘적인 화풍은 그를 대표한다. 그가 그린 산수화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소박함과 따뜻함을 꼽을 수 있다. 박승무가 표현한 산수는 주로 선경(仙境)으로 신선이 사는 속세에서 벗어난 깨끗한 풍경을 나타낸다. 그래서 <설회강산>(그림 1)과 같이 노인과 아이 등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인물의 모습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혹은 그의 고향인 옥천, 그가 자주 오갔던 대전과 광주, 목포의 풍경도 그의 그림의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그의 작품 <청하어작>(그림 2)에서는 대청댐이 건설되어 수몰되기 이전 그의 고향 옥천 주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운무가 낀 높은 산봉우리와 굽이치는 맑은 물의 수려한 산세를 지닌 고향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림 1. 「설회강산」(박승무, 1958)의 일부                                                                          ©배가현 기자
그림 1. 「설회강산」(박승무, 1958)의 일부                                                                          ©배가현 기자
그림 2. 「청하어작」 (박승무)                                                                                           ©배가현 기자
그림 2. 「청하어작」 (박승무)                                                                                           ©배가현 기자

 

 

동양화에 추상을 더하다, 화가 이응노

이응노는 역시 화가의 길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그림을 배우기 위해 상경했다. 그는 해강 김규진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고, 서울에 설립된 신미술운동 단체였던 ‘고려미술원’의 연구생으로 전통 서화를 습득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양화와 서양화를 두루 섭렵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초기 그림에서는 화법의 다양성이 엿보인다. <결혼도>와 <정물화>(1944)에서는 세필과 선명한 원색의 사용, 먹선 대신 면으로 처리된 배경 풍경이 새롭다. 

이응노는 점점 실물과 경치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해석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자연의 모습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을 경계했다. 대신 자연을 느끼고 그와 대화하면서 자연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새로운 미술을 추구했던 그는 “예술가는 자연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모든 디테일을 그대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이렇게 하면 본질이 사라져 버릴 우려가 있다. 하지만 자연을 배반해서도 안 되는데 그러면 자연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모든 요소는 자연의 모습으로 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라며 그만의 미학 개념을 제시했다. 

<대숲>(1951)(그림 3)은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드러내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응노는 대나무 그림의 대가였던 스승 해강 김규진에게 ‘대나무처럼 항상 푸르라’는 뜻의 ‘죽사’라는 호를 받을 만큼 대나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화가였다. 그렇게 대나무 그림을 그려오던 그는, 1931년의 어느 날 처마 밑에서 소나기를 피하다 비바람에 나부끼는 대나무를 보며 “형상이 천태만상하고 빛깔이 변화무쌍”하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대숲>은 “모방이 아닌 창조에 의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그때의 깨우침을 표현한 그림이다.

그의 작품에서도 박승무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옛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강>(1956)에서는 그가 마포구 도화동 집에서 내려다본 당시 서울의 풍경이 담겼다. 작품에는 나룻배 위에서 노를 젓는 사공이 등장하는데, 지금은 생소하지만 한강의 나룻배는 과거 서울의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수단 중 하나였다. 긴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당인리발전소(서울화력발전소)의 모습도 보인다. 그림을 통해 발전하는 서울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응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추후 그의 작품은 보다 간결하고 추상적으로 변모했는데, 추상적인 동물 그림들과 산수화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이다. (그림 4) 화가의 손끝에서 현대화, 세계화된 동양화의 새로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림 3. 「대숲」 (이응노, 1951)                                                                                ©배가현 기자
그림 3. 「대숲」 (이응노, 1951)                                                                                ©배가현 기자
그림 4. 이응노의 동물화 작품들                                                                                  ©배가현 기자
그림 4. 이응노의 동물화 작품들                                                                                  ©배가현 기자

 

두 동양화가의 교류와 지지

전시관에는 서울 장사동에 살았던 박숭무가 전주 본가에 머물던 이응노에게 보낸 엽서 3점이 있다. 작별 후 서운했던 마음이 담긴 안부 인사와, 집 이사로 분주했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정겹다. 이응노가 11살 어림에도, 박승무는 그를 형이라고 칭하며 존중했다. 전주에서 간판을 만드는 가게를 운영하던 이응노는 1934년 박승무가 개인전 <심향화회 전람회>를 전주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때 박승무가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한 그림 <천첩운산>(1934)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에 적힌 시 구절 “구름 산이 겹겹이니 시름도 겹겹이요, 달빛이 하늘에 가득하니 이내 한도 가득하다. 갑술년 석류꽃 피는 계절 완산 여행길에 죽사형을 위해 그리다.”에는 이응노를 향한 애정과 일제강점기 시대의 아픔이 함께 담겼다. 예술가로서 서로를 진심으로 존경하며 지지했던 두 화가는, 이후 덕수궁에서 열린 <해방기념문화축전미술전>을 비롯한 각종 단체전에 함께 참여했고 목포에서 함께 합작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전시를 더 즐기는 법

이응노미술관은 유명 건축가 로랑 보두엥(Laurent Beaudouin)이 설계한 건물이다. 그는 이응노의 문자 추상 작품인 <수(壽)>(1972)의 조형적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미술관이 이응노 선생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반영하는 하나의 완벽한 예술작품이 되도록 설계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술관 주변을 산책하며 건축적으로 상징화된 이응노의 작품 세계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이응노미술관의 전시 해설은 평일 및 주말 14시, 16시에 운영되며, 별도의 예약 없이 현장 참여가 가능하다.

 

장소 | 이응노미술관
기간 | 2023.4.25~2023.8.13
요금 | 성인 1,000원
시간 | 화 - 일요일 10:00 - 19:00
문의 | 042) 611-9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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