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말의 우리 학교 학생들이 다들 그렇겠지만 기자수첩을 자원해서 쓸 만큼 여유 있는 일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퇴직 전 마지막 호의 기자수첩을 쓰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카이스트신문에 들어온 첫 해, 퇴직하며 마지막 호의 기자수첩을 쓰신 기자님이 멋있어 보여 생긴 로망이다. 그 로망을 이렇게 이루게 되었다.

기자수첩을 쓰며 지금까지 몇 개의 신문 발행에 참여했는지 세어보고, 면접 때 썼던 기사와 수습기자 때 썼던 기사를 다시 읽어봤다. 489호부터 519호까지 총 서른한 개의 신문에 기사를 쓰며 문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다시 보니 아쉬운 부분들도 몇 보였다. 그래도 면접 때 썼던 기사가 꽤 괜찮았던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수습기자 때 썼던 취재부 기사는 딱히 흥미롭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취재사회부 기자로 2년을 일했고, 특히 학생사회와 축제 관련 기사를 많이 썼다. 지난번 기자수첩에서도 말했듯이, 행사 기획과 학생사회 활동이 내 대학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는데 카이스트신문에서의 내 기사들도 그러한 점이 많이 반영됐던 것 같다.

이번 호에 쓴 두 개의 기사가 마지막이라 의미 있기도 했지만 기사 주제도 나에게 의미 있었다. 전에도 축제 기사를 종종 썼는데 이번에도 석림태울제를 취재해 한 면이 넘는 기사에 참여했고, 일 년 전에는 새내기학생회의 실무자로 참여했던 새내기체육대회를 취재를 위해 다시 방문했다. 신문사 생활을 정리함과 동시에 내 대학 생활을 담는 것 같기도 한 마지막 호가 된 것 같다.

바쁜 상황에서 거의 두 면에 가까운 분량을 맡았는데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뜻깊은 마무리였다. 솔직히 말하면 두 개의 기사를 맡겠다고 한 것을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2주간 꽤 후회하기도 했다. 재밌어 보이는, 그러나 힘든 기사를 고를 때마다 늘 그랬던 것 같다. 인터뷰가 아니라면 쉽게 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으며 재밌기도 했지만 바쁠 때 기사 마감을 하거나 어려운 인터뷰이를 만나면 많이 힘들기도 했다. 그래도 모든 힘든 경험이 그랬듯 곧 미화되어 좋은 기억만 남을 것이다.

다른 여러 활동으로 바빠 한 학기 동안 짧게 부편집장을 맡았던 것을 빼고는 직책을 맡지도 않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일했다. 대학 생활 중 가장 오래 몸담은 단체이고, 졸업 때까지 이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아쉽지만 또 후련하게 이제 카이스트신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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