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냄새를 맡음으로써 바깥을 탐색하는 동시에, 우리의 내면을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이는 후각이 냄새의 근원 물질에 대해 판단하는 감각이지만, 그에 우리의 내면 정보도 상당 부분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음식 냄새가 있습니다. 우리는 음식의 냄새를 맡고 상하지는 않았는지를 구별해 내고 그 음식이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몸 상태는 음식 냄새에 대한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며칠 내내 라면만 먹은 상태에서 맡은 라면의 냄새는 오랜만에 접한 라면 냄새와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평소에는 달콤했던 빵 냄새가 탈이 났을 땐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처럼 주체에 따라서, 심지어는 농도나 시간에 따라서도 변화하는 냄새는 주관적이면서도 모호하게까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냄새는 연구하기 까다로운 감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과학은 특유의 객관성으로 후각의 기작을 밝히려 오랜 기간 노력해왔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과학의 시선에서 바라본 후각의 여러 흥미로운 면면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 오예원 기자
© 오예원 기자

 

냄새를 추적한 과학자들

고대의 철학자들은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다 모호한 감각인 후각에 딱히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냄새는 동물에게 중요한 감각일 뿐, 인간에게는 부차적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이었죠. 중세에 이르러서는 감각을 죄와 동일시하기 시작하며 냄새도 함께 도덕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체나 음식이 부패하는 냄새나 질병의 악취는 신이 창조한 싱그러운 생명의 냄새와 대비된다고 여겼습니다. 갈레노스의 체액 이론을 기반으로 한 중세 의학에서 냄새는 의사들의 진단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배설물이나 체액의 냄새, 맛, 색 등은 질병의 분류 기준이 되었고 체액의 균형을 조정해 냄새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 치료의 방식이었습니다. 

18세기에 와서 식물학이 꽃피면서 냄새는 과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치료 등에 활용하고자 식물 냄새를 분류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습니다. 그중 안톤 케르너 폰 마릴라운은  생존과 생식의 수단으로서 냄새를 이해하고 유인제와 기피제로 냄새를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냄새 분자는 대부분 혼합물이었고 식물이 내뿜는 냄새는 하루 주기에도 계속해서 변화했습니다. 이처럼 불규칙한 냄새 현상을 일정한 범주로 나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는 냄새를 분류하는 작업은 인기를 잃었고, 분자 구조 형태로 냄새를 설명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존 아무어는 일부 후각을 상실한 환자가 맡지 못하는 냄새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화합물의 분자 구조와 냄새 종류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냄새 분자를 인식하는 수용체 집단을 밝히려는 시도들로 이어졌습니다. 긴 노력 끝에 1991년, 린다 벅과 리처드 액설은 후각 수용체 유전자군을 찾아냅니다. 이 공로로 린다 벅과 리처드 액설은 2004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합니다. 수용체 유전자에 대한 정보는 후각 수용체를 실험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었고, 덕분에 후각 연구는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후각 수용체가 냄새를 인식하는 법

시각과 달리 후각은 선형적인 감각이 아닙니다. 빛의 파장과 달리, 후각의 자극 물질들은 물리적 특성이 다차원적입니다. 한 예시로 알데하이드라는 유기 분자는 탄소 사슬의 길이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내뿜는 냄새도 다릅니다. 탄소가 8개인 알데하이드는 지방질 냄새가, 10개일 때는 귤 냄새가, 그보다 많으면 꽃향기가 납니다. 여기서 탄소의 개수나 분자의 크기는 냄새의 종류를 예측하는 데 어떤 단서도 되지 않습니다. 

이 결론은 자연스레 후각 수용체는 어떤 기준으로 냄새 분자를 인식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신경 과학자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의 연구팀은 생쥐의 후각 상피세포를 이용해 각 수용체가 어떤 고리 화합물들을 인식하는지에 대해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후각 수용체가 비슷하게 인식한 분자들은 실제로는 화학적으로 거리가 멀었고, 화학적으로 비슷한 분자이더라도 후각 수용체는 다르게 인식했습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발견한 패턴은, 극성을 띠는 표면의 면적 넓이를 기준으로 특정 수용체가 해당 화학 물질을 받아들이는지가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극성 표면 면적이 가장 좁은 분자와 가장 큰 분자 모두를 인식하는 수용체는, 극성 표면 면적이 그사이인 다른 분자들도 모두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후각 수용체에 대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냄새 분자의 혼합물을 인식할 때 발생하는 ‘억제’와 ‘증강’ 현상입니다. 개별적으로 있을 때 특정 수용체들을 활성화하는 냄새 분자들이 혼합되면 갑자기 서로의 작용을 억제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냄새 물질이 개별로 존재할 땐 반응하지 않던 세포들이 같이 존재할 땐 활성화되기도 합니다. 이는 다른 자리 입체성 상호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냄새 분자 A가 한 후각 수용체의 1번 자리에 결합함으로써 후각 수용체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그 결과 이 후각 수용체는 2번 자리에 냄새 분자 B가 새롭게 결합할 수 있는 활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는 냄새 분자가 수용체 단백질에 결합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수용체 단백질의 구조가 변화할 수 있고, 단백질의 구조에 따라 기능이 변화 및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억제와 증강은 서로 다른 조합의 혼합물 냄새를 선별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다양한 조합의 억제와 증강 현상들은 새로운 조합의 화합물을 접하더라도, 기존에 알던 혼합물의 패턴과 중복되지 않은 방식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만약 억제와 증강이 없었더라면,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냄새 분자 조합들을 구별해 내기에 인간이 지닌 후각 수용체 개수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현대 과학이 이해하는 후각

후각 수용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용체에 입력된 정보가 뇌에서는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하나의 후각 상피세포에는 단 한 종류의 후각 수용체만이 발현된다는 중요한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후각 상피세포의 축삭이 후각 망울에 모여 공 모양의 신경 구조물인 토리(glomerulus)를 형성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같은 종류의 후각 수용체 유전자를 발현하는 세포들은 모두 하나의 토리로 수렴합니다. 즉 어떤 냄새 분자가 특정 수용체를 활성화한다면 후각 망울 내에서는 그 수용체에 대응하는 단 하나의 토리가 활성화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후각 망울에서 토리는 개별 수용체의 활성을 나타내는 공간적 단위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후각 망울은 시각계의 망막에 비유되면서 후각 지도 역할을 할 것이라는 과학계의 기대를 받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정된 후각 지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후각 망울의 냄새 신호가 첫 번째 시냅스를 지난 뒤에는 이 공간적 위계 정보가 아예 사라져 버립니다. 후각 망울에서 대뇌의 조롱박 겉질이라는 구조로 전달된 후각 신호는 완전히 뒤섞이고 공간적으로 고정적이지 않은 정보가 되어버립니다. 

대뇌에서 냄새를 암호화하고 해석하는 과정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아주 넓은 공간을 암호화에 사용하고 각 후각 자극은 정해진 표상이 아닌 개별적인 표상으로 표현됩니다. 냄새 자극에 따라 정해진 경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뇌는 내부적으로 자신의 암호를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각 과정은 분명한 규칙성이 있고 후각 정보를 바탕으로 어떠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개인마다 냄새 자극의 표상은 다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냄새에 대한 이미지는 냄새 자극에 암호화된 정보가 아닌, 후각 정보를 우리 뇌가 분류하며 생겨나는 정신적인 인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냄새를 향유하는 인간

냄새는 우리 삶에서 정말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라벤더 향과 같은 아로마 향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혈압을 낮추고 마음을 안정시켜 줍니다.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선택할 때 향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냄새가 주는 즐거움을 일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적재적소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 기사에서는 조금 더 보편적이고 흔하지만, 소중한 후각 경험인 먹는 즐거움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데에 후각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의 다양한 풍미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경로가 두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들숨 경로와 날숨 경로입니다. 

우리가 주로 냄새를 ‘킁킁’ 맡고 숨을 들이쉴 때 사용하는 것이 들숨 경로입니다. 그리고 냄새 분자가 목의 뒷부분에 머무르다가, 폐에서 나오는 따뜻한 공기에 섞여 인두를 따라 올라와 후각 상피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날숨 경로입니다. 인두는 입과 코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넓게 열려 있어 입안의 음식물 분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줍니다. 특히 음식이나 액체를 삼킬 때, 펌프 작용이 일어나 폐에서 날숨이 올라오면서 음식의 냄새를 전달해 줍니다. 콧구멍 앞에 손가락을 대고 침을 꿀꺽 삼켜보면, 코에서 따뜻한 공기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생쥐나 개처럼 우리보다 후각에 강한 다른 동물들은 이 날숨 경로를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과 일부 영장류만 진화 과정에서 후각을 맡는 코와 호흡계를 분리하는 가로 모양의 뼈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코와 입 두 곳을 통해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입이 제2의 코가 된 것이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들숨 냄새와 날숨 냄새는 대체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릴 때 향기롭던 차의 향이 오히려 맛볼 때는 잘 느껴지지 않았던 경험이 있나요? 코를 강하게 찌르는 냄새가 나는 치즈는 직접 먹었을 때 훨씬 만족스럽기도 합니다. 이는 두 경로의 공기 흐름과 온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공기 흐름이나 온도에 따라 어떤 분자가 먼저 후각 상피에 도달하는지가 달라지고, 뇌가 인지하는 활성 패턴도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경로를 함께 사용해야 음식에 대한 감각적 표현이 완성됩니다. 앞으로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들숨 경로와 날숨 경로를 모두 활용해 가며 음식의 풍미를 적극적으로 즐겨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오예원 기자
© 오예원 기자

 

참고문헌 |
<냄새>, A. S. 바위치, 세로(2020)
<향의 과학>, 히라야마 노리아키, 황소자리(2021)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