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경 - 「등고선 없는 지도를 쥐고」

 

(주)예스이십사 제공
(주)예스이십사 제공

스마트폰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다가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마주한 경험이 있는가? 권민경 작가의 에세이, <등고선 없는 지도를 쥐고>에서는 걷기 좋아하는 시인 부부가 무더운 여름날 스마트폰 지도를 따라가다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 일화가 등장한다. 권민경 시인과 그의 남편 ‘효’의 이야기다.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일상을 특별한 풍경으로 만드는 건 작가의 애정 담긴 관찰과 묘사다. 부부는 많은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걷기 시작했다. 버스의 사람들이 반쯤 기울어질 정도의 경사와 틈틈이 슈퍼에 들러 음료수를 마셔야 하는 더위에 굴하지 않고 공원 정상에 올라 연희동 시내를 내려다본다. 내려가는 길에는 가위바위보 진 사람이 누워서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놀이를 하는 남자아이들을 만난다. 책 표지에 있는 그림이 바로 이 장면이다. 어떤 선택 이후에도 씩씩하고 즐겁게 나아가며 주변에 다정하고자 노력하는 시인의 모습은 그의 문장과 닮았다.

이 책은 민음사 문학론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의 여덟 번째 책이다. 매일과 영원에서는 정해진 형식 없이 작가의 일기 같은 글을 모아 책을 내고 있는데, 한 권당 작가 한 명의 글이 묶여있다. 작가의 일상, 작품, 문학론이 적절하게 섞인 책을 통해 독자는 작가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권민경 작가는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의 제목으로 첫 시집을 냈고, 작년에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라는 두 번째 시집을 냈다. 이 책에서 작가는 2011년, 2018년, 2022년의 시를 모두 다루며 시의 탄생 배경을 소개한다. 배경은 어렸을 적 하던 장난이 되기도 하고, 마음과 몸이 차례로 아팠던 때의 경험이 되기도 한다. 구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크게 세 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친구 최민이 재밌게 읽을 만한 글을 쓰고자 노력했던, 시인이 되고자 하던 시절을 담았고, 2부에는 ‘효’와 걷고 글 쓰는 일상을 통해 비로소 시인이 된 삶을 보여주며, 3부에는 작가 자신이 도슨트가 되어 자신의 시와 1, 2부의 뒷이야기를 설명한다.

작가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시가 고여야 한다며, 그러려면 실컷 놀고 실컷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에게는 배드민턴치고, 산책하고, 밤늦게 마트에 가고, 게임을 하는 등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노는 행위라고도 덧붙인다. 실컷 놀고 실컷 공부하며 풍부하게 살기, 시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의 방식일 테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은 결국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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