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다가 재미가 없으면 10초씩 건너뛰기도 하고, 줄거리는 알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면 배속으로 빠르게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인 드라마 영상을 한 시간도 안 되어 다 보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유튜브에 올라오는 드라마 시리즈 몰아보기로도 충분히 드라마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 몇 시간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 드라마를 소비할 수 있다. 유튜브의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가 등장하며 1분이 안 되는 영상에 익숙해졌고, 1분을 넘기는 영상을 보는 데엔 엄청난 정성이 필요하게 됐다. 배속 서비스를 사용하면 대사가 빨라지고 그에 맞춰 자막도 속도에 맞춰서 나온다. 또한, 화면을 빠르게 두 번 누르면 앞이나 뒤로 10초 혹은 5초 건너뛰기가 가능하다. 이렇게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OTT(Over The Top,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대부분이 배속 서비스와 건너뛰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시청자들의 주도적인 시청 패턴을 반영한 결과이다. 이미 봤던 영상에서 제대로 듣지 못했거나 또 보고 싶은 장면을 보기 위해 건너뛰기를 사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영상을 건너뛰거나 배속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이윤지 기자
© 이윤지 기자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빨리 감기로 영상을 보는 것에 대해 세 가지 배경을 이유로 댔다. 우선, 봐야 할 작품이 너무 많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영상 작품을 가장 값싸게 볼 수 있다. 영화를 보기 위해 DVD를 대여하지 않아도 방에서 편하게 휴대전화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매달 만 원 이하의 비용으로 원하는 만큼의 여러 방송을 볼 수 있고, 본방송이 아닌 프로그램, 현재 상영 중이 아닌 드라마나 영화도 OTT에 있다면 아무 때나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고, 봐야 할 작품은 너무 많은데 시간은 한정적이니 배속 기능이나 건너뛰기 기능으로 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시간 가성비를 따진다는 것이다. 즉, 시간이 아깝고 소중하기에 어떤 영상에 온전한 시간을 다 쏟아도 되는지 따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봐야 할 중요한 작품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이렇게 지름길을 찾는다.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낭비이고, 시간 가성비가 나쁜 것을 두려워한다. 

이때, 영상이 작품인지 콘텐츠인지 짚을 필요가 있다. 요즘은 ‘작품을 감상한다’보다 ‘콘텐츠를 소비한다’가 더 익숙하다. 감상은 행위 자체에 목적이 있어 작품의 예술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품을 접하고 음미하고 몰두하는 것으로 독립적인 기쁨과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반면, 소비는 다른 실리적인 목적이 수반되는 것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 화제를 따라가기 위해,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영상을 본다면,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같은 영상 작품이라도 시청자에 따라 소비할 수도, 감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 배경으로는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길 원하는 관객과 친절히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영상이다. 배우의 슬픈 표정, 기쁜 표정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설명할 수 있지만, 자신이 지금 어떤지를 대사로 일일이 설명하는 작품이 많다. 이렇게 친절한 영상이 늘어났고, 이런 작품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대사가 없으면 건너뛰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틀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회

이해하기 쉬운 것이 대접받는다. 어떤 문제에 대해 찬반이 오가고 대립이 생기면 소통이 힘들고, 불쾌해진다. 이런 불쾌함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빠르게 정답을 알려주는 곳에 모인다. 영상 또한 마찬가지로, 해석해 주는 영상이나 이해하기 쉬운 영상이 인기가 많다.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으면, 관객이 알아서 이해해야 하고, 정답을 모른 채 틀릴 수도, 맞을 수도 있다. 연출가나 작가는 이렇게 사람마다 같은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이런 자유를 만끽하려 하지 않는다. 오독을 싫어하고, 모호한 것은 불친절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더해 SNS의 탄생으로 피해 사례를 올리기 쉬워졌다. 어떤 작품이 이해하기 어려워 불친절하다고 느끼면 비판하는 글을 쉽게 어디든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재밌다는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그 작품이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걸작이 아니라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영상을 만드는 이들도 비판의 글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후기를 피하기 위해 더욱 친절한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도리어 악순환을 만든다. 친절한 설명과 자막으로 도배된 영상에 익숙해져 점점 이해력을 키울 기회를 잃고, 더 쉬운 것을 바라게 된다. 습관이 쌓여 교양이 되고, 이해력이 되는 것인데, 이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쾌락주의에서 본 빨리 감기

빨리 감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영상을 어떻게 보든 자유이며, 보는 방식을 강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보고 싶은 작품만 보고 싫은 작품은 보지 않는다. 같은 작품이더라도 좋아하는 장면은 반복해서 보고, 별로인 장면은 건너뛰며 본다. 이렇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신문이나 잡지와 인터넷을 예로 들어보겠다. 신문이나 잡지는 관심 없는 기사나 광고도 눈에 들어오게 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은 원하는 내용을 검색하고 제목을 클릭해 원하는 것만 볼 수 있다. 구글, 인스타그램 등의 서비스는 알고리즘을 파악해 사용자의 관심사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기사나 광고를 우선으로 표시한다. 그러니 사용자들은 관심이 없는 내용은 접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사용자에 맞춰 필터링한 정보를 제공하여 사용자는 이미 필터링한 정보만을 접하는 것을 ‘필터 버블’이라 한다. 이는 영상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유튜브는 사용자가 봤던 영상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해석하고, 사용자가 흥미를 느낄 만한 영상들을 추천해 준다. 나아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개인 PC가 보급된 후로, 굳이 사람들이 모여 영상을 보지 않게 되었다. 거실에서 가족이 다 모여 TV 프로그램을 보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혼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원하는 것만 볼 수 있게 되다 보니, 자신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전개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작품을 보기 전, 줄거리나 후기를 먼저 읽고 자신이 원하는 흐름이라면 보고, 아니라면 보지 않는 것이다. 꼬인 전개나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재미있는 요소가 아니라 도리어 사용자를 불쾌하게 만든다. 이는 영상을 볼 때 감정을 많이 쓰지 않고 절약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시청 습관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영상 시청의 변화

과거의 영상 작품 시청은 영화관에서만 가능했다. 정해진 상영 시간에 맞춰 영화관에 가야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이후 TV가 보급되며 영화관에 굳이 가지 않아도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지만, 이 또한 정해진 시간에 시청자가 맞춰야 했다. 비디오가 등장하며 영상작품을 개인이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원하는 장면에서 멈출 수 있었고, 빨리 감기 또한 가능했다. 나아가 개인 PC가 보급되고 OTT가 등장한 것처럼 기술은 인간이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발전해 왔다. 
 

오늘날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거나 건너뛰며 보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들도 있다. 제작자가 의도했던 그대로를 보지 않아 그 의미가 곡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레코드나 비디오가 나타나 집에서도 영상을 볼 수 있고, 원할 때마다 몇 번이고 시청할 수 있었다. 즉 비디오도 실리적인 목적을 위해 원형의 상태로 감상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오늘날의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방법이 출현할 때마다 거센 반대가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가 제작가의 환대를 받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시청 습관이 많은 이들에게 허용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미 많은 서비스가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 기능을 제공한 것도,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하고, 원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 이윤지 기자
© 이윤지 기자

 

참고문헌 |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현대지성(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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