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의 선생님들에게 듣는 독특한 이야기, 강연과 함께하는 하루를 즐기며 여유 시간에 사소한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KAIST 전산학부 20학번 학생이자, 수학 스토리텔러로 활동하며 <발칙한 수학책>을 집필한 최정담 작가를 만났다. 최 작가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수학의 세계에 접근해 얻은 통찰을 명료한 글과 재치 있는 그림으로 풀어내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최 작가의 경험이 담긴 답변을 바탕으로 작가를 꿈꾸는 다른 학생들이 도움을 얻어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최정담 학우 제공
최정담 학우 제공

 

 

작가(수학 스토리텔러)로써,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시나요?

제가 글을 쓰는 주된 목적은 앎의 가치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수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글을, 대학교 저학년 때에는 수학의 즐거움을 전달하는 글을 썼는데, 요즘에는 수학의 철학적, 인문학적 가치를 강조하는 글을 쓰고 있(싶)어요. 아마 다음 번에 출판되는 책은 그런 성격의 글이 될 듯하네요. 또한 저는 수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에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수학 이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어요. 아직 별 볼 일 없지만 나중에 유익한 채널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저는 창작을 좋아했는데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글짓기도 좋아했어요. 물론 학과목 중에서는 수학을 제일 좋아했죠. 세 가지 흥미에 자연스럽게 이끌린 저는 수학적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설명하는 콘텐츠를 온라인 공간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관심 있게 본 한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와 <발칙한 수학책>을 집필했죠. 책이 좋은 성과를 거둔 덕분에 몇 군데 다른 출판사에서도 제의가 들어왔고, 덕분에 집필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네요.
 

그러고 보니 서적 출판 이전부터, 티스토리 블로그에 자주 수학 내용이 담긴 글이 올라오던 걸 본 기억이 나네요.
서적도 그렇고, 블로그에도 그렇고, 굉장히 다양한 주제들로 글을 쓰시는데, 주제 선정은 어떻게 하나요?

수학 공부를 하다가 흥미로운 주제를 발견하기도 하고, 앞서 언급한 수학 커뮤니티 등지에서 줍기도 합니다. 위키피디아도 은근 도움이 되는데, 문서 말단에 있는 ‘See Also’ 항목을 따라가다 보면 참신한 주제를 가끔 발견해요. 요즘은 다양한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얽은 다음에 나의 생각을 가미하는 식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수학의 주제/내용이 어떤 것인가요?

최근에는 수학기초론에 가장 큰 흥미를 느낍니다. 수학의 핵심 원리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집합론과 논리학이 대표적인 예시이죠. 다른 수학은 공부하다 보면 신기한데, 수학기초론은 공부하다 보면 신비로워요. 미술 작품이 아니라 대자연 앞에 서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수학기초론은 집합의 성질을 밝히거나 기호의 작용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추상적 사유의 본질과 한계가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시도처럼 느껴지거든요. <발칙한 수학책>에서 필요 이상으로 논리학 이야기를 한 것도 저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었습니다. 수학기초론 중 관심 주제는 1차 논리의 불결정성과 2차 논리의 불완전성을 절충하는 논리학의 가능성입니다.
 

수학적인 내용들을 전달하다 보면, 배경지식이 없이 이해하기에 곤혹을 겪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매번 글들을 읽으면서 느낀 부분인데, 어려운 부분들을 설명하기 위한 모델을 굉장히 잘 짜시더라고요. 이런 수학적 내용에 대한 모델들은 어떻게 떠올리시나요?

혹시 자비의 원칙이라는 표현을 들어 보셨나요? 논쟁을 할 때 상대 주장에서 모호한 부분은 최대한 합리적으로, 상대의 의도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글쓰기를 할 때는 반대의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무자비의 원칙이라고 할까요. 글을 쓸 때 모호한 지점이 있다면 분명 어떤 독자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원칙입니다. 저는 글을 쓰고 나면 무자비한 독자를 상정하여 다시 글을 읽어 봅니다. 그러면 본문 중에서 독자가 따라오다가 놓칠 법한 지점이 눈에 보이는데, 체크해 둡니다. 그 지점들을 염두하며 산책을 하거나 커피를 마셔요. 넋놓고 생각하다 보면, 이런 식으로 글을 재구성하는 것이 결점을 보완하겠다는 발상이 떠오르죠. 정 떠오르지 않으면 수학 유튜브 채널이나 math.stackexchange, r/math 등을 돌아다니며 힌트를 구하고요. 해결책이 떠오르고 나면 다시 노트북으로 돌아가서 글을 수정하고, 다시 무자비한 독자를 상정합니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만 좋은 모델이 만들어지고,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최근에 유튜브에 올려주신 영상들을 보다가 언어학에 관한 내용을 보았던 기억이 나요. 언어학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언어학은 응용논리학입니다. 언어의 문법적 구조를 연구하는 통사론, 음운의 변동 규칙과 그 과정을 추적하는 음운론,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언어의 옛 모습을 재구성하는 역사언어학 모두 논리적 방법론을 따르는 학문들이죠. 때문에 저에게는 언어학이 마치 퍼즐처럼 느껴집니다. 그것도 일상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퍼즐이지요. 게다가 언어학은 사회, 역사, 정치,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는 데 가치 있는 안목입니다. 그 매력에 이끌러 종종 언어학 관련 책을 읽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니 나만의 언어학 영상을 만들 정도의 잡지식이 생기게 되었네요.
 

이렇게 보니, 굉장히 다양한 분야들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혹시 또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을까요?

자연과학, 인문학, 그리고 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습니다. 잡다한 책과 유튜브 영상을 접하다 보니 관심 분야가 끝도 없이 넓어지더라고요. 학문은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다양한 분야들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 내는 현실의 정교한 축소판이죠. 그리고 모든 생태계가 그렇듯이 학문의 세계 또한 오래 몸담을수록 더 다채롭고 놀라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화학을 많이 알수록 생물의 신비에 큰 감동을 느끼고, 역사를 많이 알수록 예술 작품에 깊이 몰입할 수 있죠. 그 양성 피드백에 한 번 발을 들인 이후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네요.

지금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수학, 철학, 그리고 물리학입니다. 수학은 전공하고 있고, 물리학은 독학하고 있는데 재미있어서 부전공 신청을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철학의 경우에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아 관련 책을 자주 읽었는데요, 작년과 올해에는 학점교류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전공 수업을 수강했습니다. 나중에 더 깊이 공부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수학, 물리학, 철학이라는 조합에서 예상되겠지만 저는 세계의 근원적인 질문에 큰 매력을 느껴요. 말하자면 궁극의 질문, 인류의 최종 도전 과제니까요. 수학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하고, 물리학은 그 언어로 모델을 구축하며, 철학은 어떻게 그 모델을 해석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이 삼총사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 큰 영광이자 기쁨입니다.
 

이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인생 책으로 <서양 철학사>를 추천하시면서 그 이유로 실존주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한 부분을 봤어요.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로 알게 된 이후에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이론이라고 설명하시던데, 선배는 실존주의 철학으로부터 어떤 관점의 변화를 얻게 되셨나요?

크게 다섯 가지의 상호 연관된 변화를 얻었습니다. 첫째, 삶을 희극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둘째, 예술의 가치를 재발견했습니다. 셋째, 삶에 불평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넷째, 삶에 불평할 것이라면 나를 위한 불평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불평이어야만 정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섯째, 인도주의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철학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몇 마디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니체가 어쩌고, 카뮈가 저쩌고 하며 현학적인 이야기를 할 바에는 두 가지 유튜브 영상을 대신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영상은 쿠르츠게작트의 ‘낙관적 허무주의’이고, 두 번째 영상은 제가 제작한 ‘의미 없음의 아름다움’입니다. 전자는 꼭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후자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한 분들이 보시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 최정담을 사랑해 주시는 독자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꽃길만 걸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독자분이 1) 카이스트 학생이고 2) 제 책을 읽을 정도로 수학을 좋아한다면 높은 확률로 만날 일이 있을 테니 나중에 친해져요!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