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아름다움의 구원』(2016)에서 ‘매끈함’이라는 키워드로 현대 사회를 진단한다.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의 이음매 없는 부드러운 풍선 조형물에서부터 스마트폰의 유려한 곡선에 이르기까지 매끈함은 현대의 중요한 미적 가치가 되었다. 한병철은 매끈함을 미의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디지털 시대의 소통방식과 현대 사회의 작동원리 일반으로 확장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좋아요”에 열광하는 SNS 문화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불편함, 부정성이 제거된 매끈한 관계에 대한 열망을 대변한다. 매끈함에 대한 지향이 도시적 차원으로 확장되면 빅데이터와 피드백 루프를 통해 사람과 자원, 정보의 중단없는 유려한 흐름과 조화롭고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강조하는 기술 중심적 스마트 시티에 대한 비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탈시설을 위한 예산 증액을 요청하며 지하철 시위를 벌였다. 2021년 12월부터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온 지하철 시위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출근 시간대에 시위 참가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연이어 지하철에 탑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도시 공간에서 가시성을 갖지 못했던 휠체어 승객들의 집단적인 등장과 이들로 인한 열차의 지연은 한병철 식으로 말하자면, 도시의 매끄러운 일상의 흐름을 중단시키는 사건이었다. 동일자들의 매끈한 세계로부터 추방된 타자성, 울퉁불퉁한 마찰과 불편한 갈등이 휠체어를 타고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출근길 정체에 불편을 토로하는 시민들이 생겼고, 무엇보다도 사태를 정파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서 정작 중요한 시위의 본질이 희석되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 시위를 통해 주장한 것은 도시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이다. 도시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사는 공간이며, 도시에 살 권리는 계급, 종교,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열려있다. 이 다양성과 복잡성, 혼란함이야말로 도시의 번영과 혁신과 창의를 가능케 하는 덕목이다. 균질한 동일자에게만 배타적으로 열린 깨끗하고 마찰 없는 매끈하기만 한 도시는 우리에게서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 장애를 가진 타인의 삶과 이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불편한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고, 다름이 공존하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에 대해 고민할 일도 적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가질 수 있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누구나 잠재적인 장애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가 결핍이 아니라 차이로 인정되고, 차이를 가진 이들이 서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우리의 가치관과 제도, 법규, 도시환경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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