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손더스 - 「패스토럴리아」

(주)예스이십사 제공
(주)예스이십사 제공

 

“파스토럴(Pastoral), 목가적인”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편안한 느낌을 주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단어다. 이 말을 조금 뒤틀어서 만든 <패스토럴리아>라는 단어는 파스토럴의 원래 의미를 비웃기라도 하듯, 등장인물들에게 불편하고, 불쾌하고, 불안한 상황의 연속을 제시한다. <패스토럴리아>의 주인공은 가짜 동굴 속에서 온종일 관람객들에게 선사시대의 삶이 어땠는지 보여주는 일개 인형일 뿐이다. 그 동굴에서 그와 함께 생활하는 파트너는 가족사가 딱한 50대 여인이다. 그들은 함께 염소 가죽을 벗기고, 불을 피우며, 가끔은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척한다. 주인공의 파트너는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계속해서 일할 수밖에 없다. 묵묵히 선사시대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는 주인공과는 다르게 그의 파트너는 관람객과 영어로 대화하고, 담배를 피우는 등 불량한 태도를 보인다. 이것은 모두 6년째 반복되는 그들의 일상이다. 

<패스토럴리아>의 작가인 조지 손더스는 <패스토럴리아> 전반에서 아주 독특한 스타일의 문장을 사용한다. 주로 짧은 문장의 연속으로 긴장감을 연출하는가 하면 가끔은 길고, 장황하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의 문장을 늘어놓기도 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표현하기 위해 내내 같은 문장을 반복하기도 하지만 그 문장들이 익숙해질 때 즈음에는 조금씩 변주를 주기도 한다. 거침없고 파격적이며 솔직한 어휘로 이루어진 그의 이러한 문장들은 기괴하고 불쾌하기까지 한 책의 내용을 한층 더 흥미롭게 읽히게끔 한다. 

<패스토럴리아>는 주인공이 자신의 반복되는 일상을 묘사하는 건조한 서술의 연속이다. 독자들은 책의 배경, 주변 인물의 상황, 심지어는 서술자인 주인공 본인의 심리조차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주인공이 불친절하게 나열하는 주변 상황으로, 그리고 가끔씩 내비치는 본인의 생각에 대한 서술 몇 줄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도 묘사된 내용의 분량과 깊이는 실제 이야기에서의 중요도에 있어서 크게 관련이 없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마저도 주인공을 한 소설의 등장인물이 아닌, 실존하는 소시민으로 읽히게 함으로써 <패스토럴리아>를 몹시 매력적인 소설로 만든다. 
 

어느 시점에 그녀가 나를 본다. 꼭, 천천히 해. 그렇게 빨리 하는 건 진짜 같지 않아, 하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천천히 한다. 천천히 하면서 그녀가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척하고 있는 것과 같은 속도로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척하기 위해 내 속도를 관찰한다. 그녀가 하는 것과 똑같이 내가 하면 내가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척하는 방식을 그녀가 문제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p. 90)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