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학생기자라고 하면 취재와 기사 작성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신문사의 기자들은 신문 발행 외에도 부가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신문을 교내 구성원들의 집 주소로 발송하기 위한 포장 작업, 교내 곳곳에 최신 신문을 열람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작업, 우체국 전달 보조 작업 등이 그것이다. 기자들이 발로 뛰며 배치한 신문들은 다음 달에 다시 가 보면 거의 줄어들지 않은 채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총학생회와 방송국 등 학교의 얼굴 역할을 하며 화려하게 활동하는 단체들에 비하면 신문사는 매우 정적이고 조용한 단체이다. 학생 기자의 존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좋은 복지와 활동비를 받으며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는 단체라서 그런지 돈을 받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학생기자는 분명히 없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하고 있다. 교내 이슈들을 누구보다 빠르게 수집하고, 이를 조사하고 정리하여 글로 담는다. 그 과정에서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무엇보다도 크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새 신문이 올 때마다 사무실에 쌓인 신문 중 하나를 집어 꼭 가방에 넣는다. 방에 고이 간직해 있는 신문 중 한 부를 뽑으면 기사를 쓰고, 교열하고, 편집하는 등 그때의 신문을 완성하기 위해 들인 노력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누구보다도 컴퓨터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아날로그가 조금 더 몸에 맞는 것 같다. 남들처럼 아이패드와 노트북을 모두 갖고 있고 평소에는 아이패드에 필기하다가도 시험 기간이 되면 펜과 공책을 찾고 연습문제들을 프린트하게 된다. 어렸을 적 펜으로 쓰며 무식하게 공부했던 습관이 남아있나 보다. 올해 초 편집장이 되기 전까지 발행된 신문을 웹사이트에 옮기고, 공식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을 관리하는 미디어정보부 업무도 병행했다. 지금까지 펴낸 모든 신문을 웹 드라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고, 내가 직접 펴냈던 인터넷 신문은 분명 종이 신문보다는 훨씬 편리하지만 무언가 정감은 가지 않는다. 아마도, 갱지와 잉크가 주는 특유의 친숙함과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무료로 발행했던 신문인 ‘착한어린이신문’이 지난달 156호를 끝으로 휴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신문 발행을 주관하는 법인단체 ‘밝은세상플러스’는 해체를 논의할 예정일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사명감으로 구독료를 일절 받지 않고 후원금에만 의존했기에 재정이 악화했다고 한다. 이를 보며 온전히 대학의 예산으로 발행하고 있는 우리대학 신문을 비롯한 대학신문이 생각났고 미래가 걱정됐다. 아마 신문 발행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인쇄료와 우편 배달료일 것이다. 우리대학의 경우 신문사의 예산을 줄이려고 하던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먼 미래에는 종이 신문이 인터넷 신문으로 완전히 대체될까 우려스럽다. 

신문은 그 자체로 우리 역사이다. 포항공대신문은 1987년 처음 창간하여 이번 443호까지, 우리대학의 모든 순간을 담아왔다. 갱지와 잉크로 만들어진 신문은 울림을 준다. 그 울림은 분명하게도, 모니터 화면 속 그것보다 훨씬 크다. 어렸을 때는 무색무취의 흰 종이와는 다르게 어둡고 편안한 냄새가 나는 신문지 자체를 좋아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신문을 좋아하게 되며 꾸준히 읽었고, 글 쓰는 게 좋아서 교지편집부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다. 그 뒤 대학에 입학해서 ‘학생기자’라는 말에 가슴이 뛰던 그 학생은 모든 게 어려웠던 수습기자 시절과 적응하여 기사 쓰기를 즐겼던 정기자 시절을 거쳐 신문사를 대표하는 편집장이 됐다. 이토록 열심히 기사를 쓰고,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해보았을 때, 답은 ‘울림’이었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갱지와 잉크가 주는 울림을 좇고 있다. 이는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전국의 모든 학생기자들도 지금의 울림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사명감으로 기사를 작성해 주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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