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2년 만의 복학을 앞둔 시점에 가족 여행 차 들렸던 제주도는 여전히 청명한 하늘과 한결같이 싱그러운 물너울을 선사했다. 굳이 ‘여전히’ 혹은 ‘한결같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인 것은, 조금 특이하게도 대여섯번의 제주도 방문 중 네 번을 여름의 심상으로 채운 것에 대한 반작용이리라. 비칠 구름조차 없어 하늘의 푸르름을 가득 머금은 백록담과 피톤치드를 양껏 발산하는 사려니숲길, 제주도는 그런 공간으로 기억되곤 한다.

제주도에서 봤던 경주마라도 된 듯, 여행을 끝마치고 얼마 안 되어 쫓기듯 복학을 했다. 그리고는 과제, 시험, 퀴즈의 쳇바퀴를 구르며 고투하던 어느 날, 문득 제주도 여행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렸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것은 가장 가까웠던 지난 여름의 여행이 아닌 20년 여름의 그것이었다. 전역 후 다시 볼 것을 약속하며, 입대를 한두 달 즈음 앞둔 남자 셋이서 함께한 여행이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20년의 제주도에서 느꼈던 감정에 대한 갈증과, 22년에 동일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 것에서 오는 미묘한 어긋남. 제주도는 변하지 않았는데 왜 가족 여행 중에는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했을까. 인간의 감정을 설명하는 단일한 실체적 방법이 존재하겠냐마는, 흘러간 시간 속에서 나의 위치가 달라졌고, 그리하여 22년의 가족 집단 내에서는 내 역할이 그 전과는 상이했기 때문이라고 믿을 따름이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 입시로, 대학 진학 후에는 본가가 멀다는 연유로 철이 들 때 즈음부터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렇기에 작년 제주도 여행은 성인이 된 후 첫 가족여행이자 실로 오랜만인 ‘함께’의 시간이었다. 다만 이전의 여행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렌터카부터 숙소 그리고 식당까지 모든 일정 관리가 내 몫이었다는 점이었다. 별반 다르지 않은 사소한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여행을 이끈다는 게 참 고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꽁무니나 따라다니던 자식 놈이 역지사지의 경험을 하고 있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축된 시간 동안 변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숲길을 걸으며 마주한 과거보다 느려지신 발걸음과, 이제는 조금 덜 신경 쓰시며 편히 여행을 즐기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천변만화하는 세상이건만, 한없이 느린 자연의 시간을 보며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내가 변한 만큼만 달라졌다 믿고 싶었다. 아니더라. 그나마 이렇게라도 글을 끄적일 수 있는 건 지난 회상과 성찰이 22년 여름 제주도를 새로운 의미로 아로새기는 고동이 되어준 덕이다. 설 명절 이후 처음 집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한밤의 창 밖을 바라보며 쓴 글과 함께 사색에 잠겨본다. 아무튼, ‘화무백일홍 인무천일호’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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