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여기 학교 앞 어궁동(어은동과 궁동 사이를 부르는 별칭)이 시끌시끌했다. 어궁짝꿍, 해커톤 MLB(Make Local Better), 취향모임 등 동네 가게에서 이웃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재미있는 대전, 즐거운 우리 동네’를 목표로 의기투합해 신나는 작당 모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윙윙 이태호 대표와 우은지 학우(산업디자인학과 박사과정), 로잇스페이스 김애림, 지하얀 대표를 만나 그들이 꿈꾸는 우리 동네 공동체에 대해 들어보았다.

 

어궁짝궁 포스터                                                                                                  우은지 학우 제공
해커톤 MLB 포스터 
 취향모임 포스터
 취향모임 포스터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태호: 동네 공유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재미있는 일들을 벌일 수 있게끔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우은지: 연구와 현장을 오가며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N잡러로, KAIST 산업디자인학과 디자인전략연구실(지도교수 남기영)에서 지역 상점 커뮤니티 디자인에 대한 박사 연구를 하고 있어요.

김애림: 도시공학을 전공했어요. 지방 재생과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서 지역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게 되었어요.

지하얀: ‘지방은 왜 재미없다고 하지?’라는 궁금증과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해, 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어은동과 궁동, 충남대학교와 KAIST 사이에 있는 이 골목을, 대학생들도 즐길 수 있고 주민들도 즐길 수 있고, 여기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무언가로 채워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윙윙이 판을 깔고, 우은지 학우는 기획에 참여했다. 로잇스페이스, 조스리스튜디오, 은유림, (주)스튜디오우당탕탕은 이 판의 플레이어로써 각 팀의 개성이 드러나는 행사들을 기획·운영했다.

 

태호: 지역 발전의 새로운 주체들을 발굴하고, 그분들이 각자 실험해보고 싶은 것들을 지원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역에 좋은 영향력을 만들어보려 했어요. 같은 취지를 가진 창업팀들을 환대하며 도왔고, 그러다 보니 한 팀 한 팀 모였어요. 팀마다 합류하게 된 계기가 다 달라요. 관심 있는 프로젝트도 다르다 보니, 여기서 하는 활동들도 점점 다양하게 확장되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은지: 로잇스페이스는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데 관심이 있는 회사예요. 조스리스튜디오는 우리 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창업한 디자인 스튜디오인데요. 대전만의 메이커를 발굴하고 메이커의 문화를 확산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은유림과 (주)스튜디오우당탕탕은 올해 5월 어궁동에 각각 독립서점과 판화공방으로 공간을 오픈하게 될 팀입니다. ㈜윙윙은 이 지역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고 있는 회사로,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플레이어분들이 일을 잘 하실 수 있는 예산과 공간, 관계에 대한 도움을 주고 있어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커뮤니티 연구를 바탕으로, 팀이 좀 더 잘 작동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느린건축’의 은정님과 건축학과 윤주선 교수님도 함께 팀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팀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은지: 대전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좋은 공간’이 되게끔 만드는 거예요. 대전에도 숨겨진 재미있는 사람들과 멋진 가게들이 많아요.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는데 발견하지 못했던 대전의 재미있는 콘텐츠들을 발굴하고 연결해서, 사람들이 ‘내가 살아가는 곳의 매력’을 발견하도록 돕고 싶어요.
 

특히 ‘어궁동’에 관심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시작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태호: ‘어궁동’이라는 이름이 동네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것 같아요. 어은동에서 궁동으로 가는 길목이죠. 충남대학교 앞의 궁동이나 KAIST 앞의 어은동처럼 사람들이 많은 상권은 아니지만, 두 곳을 이어주고 있고, 또 뒤편의 한빛 아파트에도 많은 주민분들이 살고 계시죠. 우리가 여기서 재미있는 일을 벌이면 알아주시고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분명히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프로젝트는 언제까지 지속하실 예정인가요?

은지: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지난달에는 단기간에 준비한 몇몇 행사들을 우선적으로 열었고요. 이렇게 하나의 행사가 끝나면,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점점 발전하는 형태로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 같아요.

태호: 지역에서 정말 해 보고 싶은 일들이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새롭고 재밌는 일들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계속하고 싶어요. 정치인들이 아니라 지역에 사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 나가는 거죠. KAIST 구성분들도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 언제든 연락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17일부터 30일까지 진행한 3가지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어궁짝꿍: 우리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 주인공이 되는 토크쇼

애림: 어궁짝꿍은 2022년 12월,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윤주선 교수님의 기획으로 시작된 행사에요. 작년에 진행된 1기에서는 대전 안팎의 가게 사장님들을 연결해서 짝꿍을 맺었드렸다면, 이번에 로잇스페이스가 기획·운영을 맡게 된 2기에서는 어궁동 사장님들과 대전 구도심 사장님들의 만남을 주선해서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눌 수 있는 협업 세미나를 계획했습니다.
 

참여한 동네 가게 사장님들과 참가자들은 어떤 경험을 했나요?

애림: 수익 창출에 대한 고민이 있는 소규모 취향 중심 독립 서점 사장님은 대전 구도심의 대형 독립서점 사장님과 만나 고민을 나눌 수 있었고, 술과 음식의 페어링에 관심이 많은 음식점 사장님과 초콜릿에 진심인 가게 사장님이 만나 음식에 대한 깊은 취향을 공유했어요. 참가자분들은 동네에서 마음에 드는 새로운 가게를 발견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신 것 같아요. 평소 자주 오는 공간에 담긴 사장님의 정성이 새롭게 느껴졌다는 분들도 있었고, 가게 주인 분들과 친해지는 것에 매력을 느낀 참가자분들도 계셨죠.
 

어궁짝꿍 독립서점편 진행사진 (은행동 다다르다, 어은동 버들상점)
어궁짝꿍 독립서점편 진행사진 (은행동 다다르다, 어은동 버들상점)
어궁짝궁 독립서점편 기념사진 (은행동 다다르다, 어은동 버들상점)
어궁짝궁 독립서점편 기념사진 (은행동 다다르다, 어은동 버들상점)

 

<어궁도감>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하얀: 어궁짝꿍 시즌 1을 맡았던 팀에서 어궁동 동네 사장님들을 인터뷰한 잡지 <어궁도감>을 발간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어궁어궁 인스타그램(@eogung_dong) 노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고, 어은동 동네서점인 우분투북스에서도 보실 수 있어요. 저희 로잇스페이스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잡지를 만들어 갈 예정입니다.

 

해커톤 MLB: 우리 동네 가게 사장님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대회

은지: 어궁동에는 주로 스타트업 사무실과 식음료 사업을 하는 가게들이 있어요. 두 그룹의 접점이 생기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이을 수 있는 키워드로 ‘해커톤’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힘을 합쳐 동네의 문제를 발견하고 재미있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해커톤MLB 우승팀
해커톤MLB 우승팀
해커톤MLB 진행사진
해커톤MLB 진행사진

 

 

해커톤 결과물들이 궁금해요.

은지: 커피 전문 카페, 전통주 바틀샵, 다이어리 꾸미기 전문 문구점, 방탈출 카페 총 4개의 가게가 참여했어요. 내 취향에 맞는 전통주를 추천해주는 앱, 환경과 이웃에 관심이 많은 카페 사장님을 위한 식목일 기념행사 등 각 가게에 매칭된 해커톤 참가자분들이 정말 재미있는 결과물들을 내주셨어요. 지금은 결과물들을 각 가게 사장님께 소개하면서, 실제로 구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인상 깊었던 점이나 뜻밖의 결과가 있다면?

은지: 동네에 애정을 품고 있는 참가자분들이 많았어요. 자신이 평소 애용하던 가게에 개선책을 제공하고 실제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경험이 특별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동네 손님과 사장님 모두 둘 사이의 특별한 유대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재미있어하셨던 것 같아요.


취향모임: 우리 동네에서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소모임

은지: 5월 초에 어궁동에 ‘은유림’이라는 독립서점을 오픈할 예정이에요. 독립서점은 서점지기의 개성이 묻어나고 또 그것을 판매하는 곳이잖아요. 이번 취향모임은, 서점지기 두 분이 자신의 취향을 끄집어내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데뷔 무대이자 예비 손님분들의 취향을 탐색하는 자리였죠.
 

취향모임 DIY편
취향모임 DIY편
취향모임 문학편
취향모임 문학편
취향모임 장소편
취향모임 장소편

 

문학, 음악, 일상, 장소, DIY 5가지의 주제로 자신의 취향을 소개하고, 참가자들끼리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독립서점 은유림이 기획 및 운영을 맡은 문학, 음악, 일상 편에서는 은유림의 두 멤버가 가진 취향을 소개하고, 참가자들과 공통된 취향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주)스튜디오우당탕탕이 기획 및 운영한 장소 모임에서는 참가자들이 나만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소들을 소개했고, DIY 모임에서는 각자 자신들이 만든 ‘열심히 만들었지만 조금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물건들’을 보여줬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은지: 문학 모임에서 한 명씩 시 낭독을 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우리가 초등학교 때 이후로 누구 앞에서 읽어보는 경험이 잘 없어서, 참가자분들이 부끄러워하시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모두 그 경험을 재미있어했던 점이 기억에 남아요. 음악 모임에서는 같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어요. 특히 서울이 아닌 대전 가까이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하시고, 모임이 끝나고도 계속 남아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독립서점 은유림에 대해 더 소개해주세요.

은지: 은유림은 책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지식이 모이고 생성될 수 있는 공간이 될 예정이에요. 우리가 만들어내는 지식을 바로 옆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려고 해요. ‘알쓸신잡’처럼요.

태호: 어궁동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지식과 생각이 창출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식의 전달에서 생산까지 이루어지는 ‘지식 플랫폼’을 만들 예정이에요.

은지: 동네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큐레이터가 되어서 책을 큐레이션하고 독자들이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 창작자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건강한 일상을 가능케하는 다양한 종류의 취향 모임, 서로 연구를 소개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당신의 연구를 들어드립니다’,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스테이 은둔’ 등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은지: 홍보 채널이 없어서, 이런 모임과 행사를 좋아하시는 분들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학교 커뮤니티에도 올리고 포스터도 붙였지만, 행사 시작 전까지 조마조마했어요. 어디서 입소문이 났는지 걱정과 다르게 프로그램 모두 신청이 빨리 마감되었고, 특히 어궁짝꿍 콘서트 편에는 40명이 넘는 분들이 참석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반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애림: 동네에서 하는 프로젝트잖아요. 매일 지나치고, 들리는 가게들이다 보니 일회성 만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어요. 서로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인 거죠. 마주치면 인사하고 가끔 커피도 마시러 가고요. 주변 사장님들이 물건을 빌려주시기도 공간을 제공해주시기도 하면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각자에게 어궁동은 어떤 의미인가요?

태호: 사회 문화를 바꾸는 새로운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곳

은지: 제2의 연구실이자 살아 있는 실험실

애림: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석 같은 사람들이 많은 동네

하얀: 사람이 너무 좋다
 

KAIST 구성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애림, 하얀: 동네도 둘러보면 여행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자세히 둘러보는 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은지: 본인이 하는 학업이든, 연구든, 동아리 활동이든, 사이드 프로젝트든 그것들을 할 수 있는 무대를 캠퍼스 밖의 동네까지 확장했으면 좋겠어요. 분명 새로운 것들을 얻게 되실 거예요.

태호: 함께할 수 있는,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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