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憂鬱感), 마음이 답답하고 근심스러워 활기가 없는 감정.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우울을 겪습니다. 특히 매일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고 할 일이 쌓여 있는 사람들에게, 우울감은 떼어놓을 수 없는 그림자와도 같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우울해지기 쉬우니 머리를 비우라는 조언도 종종 듣습니다만, 타고나기를 생각이 많은 성품이라 그런 조언은 안타깝게도 실현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유 모를 우울감이 짓눌러올 때, 저는 생각을 멈추는 대신 반대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 전략을 취합니다. 지금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이 내가 우울해할 만큼 가치 있는 문제인가, 해결할 수 있는가. 우울감의 원인을 찬찬히 분석하다 보면 의외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막연함은 두려움을 부풀리니까요. 분석이 끝나면 그 결과를 두 분류로 나눕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없는 문제. 전자는 더 이상 우울감의 영역에 넣지 않아도 됩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원인을 하나씩 지워가다 보면 마지막 우울감의 원인이 남습니다. 언제 끝날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 제 경우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언제일지 모를 미래,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우울감의 형태로 덮쳐옵니다. 그 어떤 원인보다 두려우면서도 당장 해결법이 없다는 점, 그리고 이 불안은 평생토록 저를 따라다닐 것이라는 점이 우울감을 한층 증폭시킵니다.

애석하지만 저 역시 이것의 해결법은 알지 못합니다. 애초에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릴 땐 성인이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은 성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 두려움에 익숙해질 뿐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그다지 오래 살진 않았지만, 지금껏 제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기를 꼽자면 고등학교 1학년 후반입니다. 입시의 두려움이 죄어오던 시기, 배움은 어려워지고 친구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나 혼자 뒤처져 있는 것 같았던 시간. 자습실에서 자율 아닌 자율학습을 하던 중 갑작스레 눈물이 터졌습니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맞지 않는 자리에서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것 같아서, 앞으로 이곳에서 보내야 할 2년 반의 시간이 두려워져서였습니다. 삼켜왔던 우울감이 한꺼번에 터지자 두 시간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습니다. 코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입을 벌리고 간신히 숨을 쉬었는데, 두 시간이 지나니 목 안이 말라붙어 기침을 해대다 피 내음이 느껴질 때쯤 간신히 호흡을 되찾았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저는 꽤 무덤덤한 성격입니다. 그러니 지인들이 제가 자습실에 숨어 두 시간 동안 운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너한테도 눈물샘 같은 게 있었냐며 놀릴 수도 있고요. 결코 유쾌한 기억이 아님에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기억을 돌이켜보는 일이 이제는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국 그 시기를 지나왔고, 이제는 괜찮으며,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요. 그 우울했던 시간도 견딘 나인데 웬만한 우울감쯤이야 괜찮지 않겠냐는 대책 없는 자신감입니다. 저는 여전히 매일, 매달, 매 학기 주기적으로 우울을 겪지만 그 정도는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 우울감에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익숙함은 두려움의 좋은 치료제입니다. 이제는 문득 우울해질 때도 “아, 이맘땐 늘 이렇지. 다시 괜찮아지겠지 뭐.”라고 넘겨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간은 언제이셨나요? 누군가는 과거의 어느 시기를 말할 수도, 누군가는 지금이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우울감은 미래에 더 단단한 자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임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지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우울감이 때로는 버겁더라도, 그것을 견뎌내고 난 우리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져 있을 겁니다.

여러분과 저 자신이 앞으로 찾아올 수많은 우울감을 견뎌내기를, 그래서 언젠가 지금을 돌이키며 “그때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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