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버깅을 위해 코드 속을 어슬렁거리는 전산학부 학생을 본 적이 있는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오류를 찾아다니는 슬픈 넙죽이 한 마리. 난 빨리 테스트케이스를 통과하고 집에 가고 싶다.”
 

새벽 4시 코딩 과제를 하다 막힌 지 30분. 내가 코드를 읽는 건지 아니면 코드가 나를 읽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아 기분 전환을 위해 기자 수첩을 쓰고 있다. 옆 동네 ChatGPT는 어르고 달래면 30분 만에 3행시랑 그냥 시를 구분할 줄 알던데, 어찌하여 내가 창조한 이 가엾은 피조물은 장장 4시간을 타일러도 92점에서 무릎을 끓는지. 창백한 교양분관 조명과 무감정한 “Test Case : 92 / 100” 문구가 나를 비웃듯 빤히 바라본다.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서 게스트 루이 C.K.는 아버지가 된 것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개를 키우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이유인즉슨 아이는 나이를 먹으면서 성장하지만, 개는 나이를 먹어도 개라서 부족함이 있거나 아플 때 소통을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컴퓨터를 훈육하는 것이 개를 키우는 것보다 같은 맥락에서 더 힘들지 않나 싶다. 개는 키울 때 조금 실수를 해도 주인을 좋아하지만 컴퓨터는 어디서 잘못되어서 아픈지 소통도 못하는 주제에 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심신미약에 빠진 채 뻑뻑해진 눈을 달래기 위해 잠깐 눈을 감는다. 머리 속에 그려지는 하얀 배경과 파란 지평선… 혹시 읽던 독자 여러분 바다라고 생각하셨나요? 제가 생각한 건 학사 시스템에 있는 드랍 버튼이었습니다. 계속해서 행복 버튼을 누르라고 속삭이는 내면의 악마와 씨름하기를 한참, 문득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과제를 미리 다 하지 못한 내 잘못이란 생각이 밀려온다. 분노의 5단계에서 타협을 넘어서 우울로 가나 보다. 

다시 한번 눈을 감는다. 이번엔 정말 바다가 보인다. 망망한 대해 위에서 노인 어부 하나가 물고기와 씨름하고 있다. 청새치와 씨름하던 노인은 어느새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한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산티아고 선생님…! 다시 눈을 떠서 과제에 대한 의지를 잡는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선생님께서 그러셨듯, 파멸할지언정 지지는 않겠다는 결기를 다져야 대어를 잡을 수 있는 법! 

핸드폰을 켜서 1시간 반으로 타이머를 맞춘다. 인터넷 창에 학사시스템을 열어 둔다. 1시간 반 내로 오류를 못 잡으면 전과할거야 엘리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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