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유 모를 우울감이 찾아왔을 땐 영화를 한 편 꺼내어 보았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를 보았는데 예전에 보았던 같은 감독의 [중경삼림]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방에 틀어두고 냉장고에서 진과 토닉워터를 꺼내 들고 잔에 비율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진토닉을 만들어 마셨습니다. [타락천사]의 첫 이야기엔 킬러의 방을 청소하는 동업자가 나옵니다. 킬러가 두고 간 쓰레기들 틈에서 그의 흔적을 찾고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을 보면 방이라는 것은 꼭 그 주인을 닮는 듯합니다. 언젠가 소설에서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한 장치로 방의 상태를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령 방이 어지럽고,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그것이 곧 혼란스러운 주인공의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인즉, 제가 제 방을 청소하는 것은 제가 제 마음을 돌본다는 뜻이겠습니다. 그 말을 상기시키며 저는 마음이 아플 땐 방 청소를 합니다.

 마음이 아플 때 청소를 한다는 이야길 들으면 깨끗해진 방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소라는 게 하는 과정은 길고 고단한데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방은 어질러지기에 십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가 끝난 그 시점보단 자연히 두면 어질러지는 것들을 내 힘을 다해 되돌려 두는 것 그 청소의 과정이 마음에 위로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며칠간 마음이 힘들어하면 방의 상태는 금세 제 마음을 대변해, 방바닥에 먼지도 곳곳에 보이고 책상에 쌓인 잡동사니들 밀린 빨래까지 방에 있는 온갖 물건들이 왜 그간 나를 잊었냐며 아우성칩니다. 퇴근 후 스트레스에 야식까지 시켜 먹고 미처 하지 못한 설거지도 저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저의 청소는 이러한 방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시작합니다. 물론 입 밖으로 소리를 내는 대화는 아니더라도 설거지를 하면서 ‘어제 먹었던 치킨은 별로였어,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 하지?’ 하고 묻는다거나 이리저리 잡동사니들을 다시 정리하며 잊고 있던 자신의 취향을 다시 탐색하는 것 말입니다. 어떤 날에는 덩그러니 놓인 카메라가 눈에 밟히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모으던 술병들을 깨끗이 씻어서 재배치하고픈 마음도 듭니다. “아! 내가 이런 걸 좋아했었구나!” 마음의 탄성을 내뱉으며 꽤 스스로 행복할 이유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옷장에서 옷들도 꺼내어 다시 정리하다 보면 지난 계절 아끼던 옷이 숨어있다가 말을 겁니다. “내일부턴 날이 풀릴 테니 어서 나를 입고 나가. 작년엔 나를 자주 찾았잖아.” 그렇게 내일은 이걸 입고 나가야지 다짐합니다. 이불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침대 위에 쫘악 펼치면 포근한 저의 잠자리도 자신감을 얻는 것 같습니다.

앞서 잠시 얘기한 영화 [중경삼림]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연인과의 이별을 겪은 경찰 663 (양조위 扮)은 방에 있는 사물들에 자신을 투영시켜 대화합니다. 홀쭉해진 비누를 야위었다고 자신감을 찾으라 나무라기도 하고 젖은 걸레를 말리면서 축 처져 있지 말라고 말을 합니다. 엉뚱하기도 순수하기도 한 이 인물은 자신에게 필요했던 말들을 방에 있는 물건들에 해주며 스스로 되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청소를 하면서 그간 바쁜 일상 혹은 지친 마음 때문에 스스로 해주지 못한 말들을 해봅니다. ‘거봐 너는 꽤 좋아하는 게 많잖아. 하고 싶었던 것들도 읽고 싶었던 책들도 여기 남아있잖아.’ 그리고 나선 싱크대 배수구 같은 곳에 숨어서 악취를 몰래 풍기던 쓰레기들도 얼른 눈앞에 꺼내 모아서 내다 버립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내 마음에도 어디선가 숨어 악취를 풍기던 불안을 마주하고 집 밖을 나와 함께 분리수거를 합니다. 언젠가 또 쌓일지 모를 불안이지만 괜찮습니다. 사람이 생활하다 보면 쓰레기가 나오는 것처럼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또 자연스레 쌓이기 마련이니깐요. 그때마다 청소와 함께 집 밖에 두고 오면 되는 겁니다. 겨우내 미처 돌보지 못하고 말라버린 화분들도 뒤늦게 돌아봅니다. 어떤 식물들은 다시 물을 주면 되살아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간 식물들도 있었습니다.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대로 두면 벌레가 꼬이기에 십상이니 정리를 해야 합니다. 그제야 또 어떤 아픔들을 마주하고 정리할 용기가 생깁니다. 한편, 왜 싹이 안 날까 한참을 살펴보던 화분은 잊고 지내던 동안 싹을 틔웠습니다. 겨울이 가는 것을 느낍니다. 어떤 일들은 이렇게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다 써서 방 청소를 하고 나면 온몸에 땀이 납니다. 땀이 났으니 샤워까지 하고 나면 때론 운동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달라 보이는 방에 한결 나아진 제가 서 있습니다. 방 청소를 하면서 슬프지 않을 이유를 조금 찾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대로 샤워까지 한 게 아쉬우니 아까 설거지하면서 생각한 맛집에 옷장을 정리하다 발견한 옷까지 걸쳐 입고 저녁을 먹으러 나서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제가 제 방을 청소하는 것은 제가 제 마음을 돌본다는 것을 상기합니다. 물론 이러한 저의 의식은 민간요법 즈음 될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더 많이 아플 땐 청소가 아니라 의사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 번 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방 청소를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끝으로 제가 요즘 청소를 할 때 즐겨 듣는 노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가수 짙은의 [여름밤]입니다. 지금은 봄이지만 금세 또 여름도 올 테니 함께 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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