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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의 50년을 돌아보며
[321호] 2009년 07월 22일 (수) 이효나 기자 same-emas@kaist.ac.kr

2009년 6월 25일, ‘팝의 황제’마이클 잭슨(Michael Joseph Jackson)이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13개의 No.1 싱글, 7억 5,000만 장의 앨범 판매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3개의 그래미상 수상 등 팝의 황제라는 별명에 걸맞은 기록을 남긴 마이클 잭슨. 팝칼럼니스트 나인화 씨에게 영원한 네버랜드의 피터팬을 꿈꿨던 마이클 잭슨의 음악 인생에 대해 들어 보았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음악이나 아티스트를 소개할 때 가장 석연치 않고 마음이 착잡할 때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를 소개할 때다. 이제는 그들의 새로운 음악을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주 많은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지금 소개하는 마이클 잭슨 역시 2009년 6월 25일 오후 2시 26분(미국 서부시간)에 숨진 아티스트로 정말로 안타깝다는 생각밖에는 아쉬움을 달리 표현할 수 없다. 1990년과 1996년‘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뮤
직비디오상'을 수상하는 등 음반을 발표할때마다 매번 각종 상을 휩쓸었고 2001년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기 절정 당시에 1억장이 넘는 레코드 판매량을 포함해 방송, 광고, 록 비디오 스타로서 그가 창출해내는 경제 규모는 당시에 천문학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그는 앨범‘Thriller’를 발표해 2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가 된 노력파이자 행운의 가수이다.
 

마이클 잭슨의 유년기
 마이클 잭슨은 미국 인디애나에서 1958년 8월 29일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조셉은 기타리스트, 어머니는 클라리넷 연주가였다. 그 사이의 9남매 중 다섯 번째인 마이클 잭슨은 아버지 덕택에 다행히도 어려서부터 자신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주를 펴보일 수 있었다. 신선하고 원초적인 음색과 정열적이고 육감적이며 소프라노를 방불케하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그의 능력을 안 조셉은 1965년 나이 어린 마이클 잭슨을 4형제로 당시 활동 중이던‘잭슨4’에 가입시켜‘잭슨5’라는 보컬 그룹을 결성했다. 그때부터 그는 5살에 최연소 리드 싱어가 되었다.
 

일생의 전환기
 하지만, 7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마이클 잭슨에게는 운명의 변성기가 닥쳤고, 부득이 노래를 쉬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이러한 시기에 솔로 싱어로의 독립을 강력하게 권유한 것은 흑인 여자 가수 다이아나 로스였다. 또한, 퀸시 존스라는 천재적인 프로듀서를 만나게 된다. 그는 청년이 되어 자신을 찾은 마이클 잭슨을 기꺼이 맞아들여 첫 솔로 데뷔 앨범‘Off The Wall’을 제작해 준다. 퀸시 존스의 마법의 손과 마이클 잭슨의 신비한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 이 앨범에서는 무려 4곡의 TOP 10 싱글이 쏟아져 나왔고, 마이클 잭슨의 솔로 데뷔는 팝 계에 큰 화제가 된다. 그 후 마이클 잭슨은 퀸시 존스로부터 앨범 제작 기술을 익힌다. 또한 그는 1981년 말 크리스마스 휴가를 런던에 있는 비틀즈의 베이스 주자이자 리더였던 폴 맥카트니의 집에서 보내면서 그로부터 작곡을 배우게 된다. 그 결과 1982년 11월 마이클잭슨은 퀸시 존스와 함께 그의 역사적인 두 번째 앨범 ‘Thriller’을 제작 발표한다.
 

마이클 잭슨의 두 번째 앨범‘Thriller’
 이 앨범에는 마이클 잭슨이 능숙한 솜씨로 만들어 놓은 ‘The Girl Is Mine’, ‘Billie Jean’‘, Beat It’‘, Wanna Be Startin Somethin'과 Toto의 키보드 주자 스티브 포카로의 작품인 ‘Human Nature’, 퀸시 존스와 제임스 잉그램의 공동작인 ‘P.Y.T(Pretty Young Thing)’, 그리고 로드 템퍼슨(마이클의 데뷔 앨범 가운데 ‘Rock with You’를 작곡한 바 있다)의 ‘Thriller’등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무려 7곡이 1983년 한 해 동안 No.1 또는 Top 10 이상 랭크되어 새로운 기록과 함께 전 세계의 팝 필드를 멋지게 누비게 된다. 앨범‘Thriller’로 마이클 잭슨은 2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8개 부문을 휩쓸어 80년대 최고의 스타로 부각되었다.
 

그 후의 음악 인생
 그 후 마이클은 리오넬 리치와 함께 ‘We Are The World’를 작곡해 85년 차트의 정상에 올려놓았는데. 이 곡에는 미국의 유명한 가수 45명이 함께 참여해 전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84년과 86년에는 모타운 레코드사에서의 미발표 곡들을 모아‘Farewell My Summer Love’와 ‘Looking Back To Yesterday’를 공개하였으며 87년엔 퀸시 존스와 손잡고 빅히트 앨범‘Bad’를 발표. ‘Bad’, ‘Dirty Diana’등을 히트시킨다. 얼마간의 공백을 거친 마이클은 91년 ‘Dangerous’라는 더블 앨범을 발표하여 식을 줄 모르는 그의 인기를 과시했다. 첫 싱글로‘Black Or White’가 히트했고 이어서 ‘Heal The World’, 그리고 앨범의 타이틀 이면서 영화에도 삽입된 ‘Will You Be There’가 연이어 차트를 장식한다.
 

인간으로서의 마이클 잭슨
 그의 음악 인생과는 다르게 인간으로서의 마이클 잭슨에게는 굴곡이 많았다. 1994년에 20세기 최고의 팝과 로큰롤의 황제였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해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나 1996년 이혼하고 1997년 데비 로우와 재혼하였지만 1999년에 이혼했다. 음악가로서는 성공했지만 마이클잭슨은 빚이 수억 달러로 불어났다. 2009년 3월 에는 샌타바버라 소재의 2,500만 달러 상당의 대저택을 압류당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지만, 가까스로 대출을 받는 데 성공, 저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대출금은 앞으로 발매되는 새 음반의 수입과 순회공연 수입으로 갚는다는 조건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10억 달러 가치가 있는 그의 재산을 노린 타살 가능성과 함께 많은 의문을 남겼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
 마이클 잭슨은 2009년 7월 13일 영국 런던에서의 공연을 준비 중이었고 애초 7월 50회 공연으로 예정된 잭슨의 컴백 콘서트도 2009년 7월과 2010년 3월에 나뉘어 열릴 예정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난 그의 영결식은 미국에서만 약 3,100만 시청자들이 TV를 통해 본 것으로 집계되어 팝의 황제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 2차례 올랐고, 수많은 기부와 자선활동, 반전음악, 지구온난화 반대음악, 인종차별 반대 등의 많은 업적을 가지고 있는 마이클잭슨은 음악과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한 음악인이다. 그는 공연 수익금을 미국 흑인학교 기금으로 전달하기도 하고 아동 학대를 반대하며 그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빈곤 계층 아이들의 구호활동에도 신경을 쓰는 등 인류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또, 전 세계 팝스타 중 가장 많은 기부 단체에 가입되어 있고 가장 많은 자선단체를 후원하고 있다고도 한다. 마이클 잭슨의 박애주의 정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언젠가 어느 저널에서 ‘마이클 잭슨은 언제나 자신의 유명세를 남
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쓰고 싶어해왔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주변과 나눌 수 있는 여유를 배울 수 있으면 한다.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적어도 그가 남긴 음악에 대한 열정과 투혼의 삶. 평화를 사랑하고 사랑을 몸소 실천한 마이클 잭슨의 세상을 향한 선한 가치관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이제 그는 음악과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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