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일 의과학대학원 학과장, “의학도 결국엔 과학, KAIST 과기의전원으로 의사과학자 양성 선도하겠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 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을 국가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보건복지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관련 준비를 지시했다. 윤 대통령이 이러한 지시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달 7일, 우리 학교에서 열린 대전 과학기술·디지털 혁신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우리 학교가 추진 중인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이하 과기의전원) 설립의 긍정적 검토를 관련 부처에 지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에 관련 부처 장관들도 화답했다. 지난 2일, 이주호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의대 쏠림 현상에 관해 “KAIST, 포스텍과 같은 과학대학에 의대를 신설해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여러 대책을 강구하겠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간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혀 지지부진했던 우리 학교의 의대 설립에 새로운 판로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의대 설립 난관은 산재해 있다. 우리 학교를 제외하고도 포스텍 등 전국 10여 개의 지자체 및 대학에서 의대 유치 의사를 시사했으며 의료계의 반대 역시 여전하다. 지난해 11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토론회(이하 의사과학자 토론회)에 참석한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은 전국의 의대 인프라가 이미 충분하기에 의대 신설이 아닌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의 협업을 통해 의사과학자 양성이 가능하다는 반대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같은 자리에 참석한 왕규창 의학한림원장 역시 “과학기술대학들이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을 만들겠다는 근거에 공감하기 어렵다”라며 반대를 표명했다.

의사과학자 토론회는 우리 학교 역시 참석한 자리로, 우리 학교는 이 자리를 통해 의료계, 국회, 정부 부처에 과기의전원을 통한 의사과학자 양성 계획을 설명했다. 이날 공개한 의사공학자 집중육성 프로그램은 3+1+4 계획으로, 3년의 의학집중교육 이후, 1년의 융합의학교육, 4년의 박사과정으로 구성된 계획이다. 의학집중교육은 기존 의과대학의 기초의학교실 및 임상실습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기초의학교육 48학점, 임상의학교육 52학점, 임상실습 52학점으로 구성된다. 과기의전원은 이공계 학부 졸업생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하여 8년 과정을 마친 졸업생에게 MD-PhD 학위를 수여할 계획이다.

의료계 단체 차원에서의 반대 움직임도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달 27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의대 신설 논의를 보며 참 한가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며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이공계열 중심대학의 의대 신설을 언급하며 의과대학생의 복수 학위 취득 제도 등이 적절하며 외려 기존 의과대학 및 수련병원을 통폐합하는 강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듯 정부, 과학기술계, 의료계까지 여러 입장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본지는 우리 학교의 의대 설립에 관한 여러 단체의 입장을 들어보고자 한다. 이에 이번 기사에서는 의사과학자 토론회에서 우리 학교의 의사과학자 양성 커리큘럼을 소개한 의과학대학원 김하일 학과장을 인터뷰했다. 본지는 추후 신 이사장, 관련 부처 관계자를 추가로 인터뷰하여 관련 소식을 독자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KAIST 문지 바이오 메디컬 콤플렉스 계획.                                                                             KAIST 제공
KAIST 문지 바이오 메디컬 콤플렉스 계획.                                                                             KAIST 제공

 

<설립 개요>
KAIST 등 과학특성화대학이 왜 의대 설립에 주목하는가?

의대는 학부 수준의 의과대학과  의전원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과학특성화대학 외에도 많은 대학이 의대를 갖고 싶어 하기에 의대 설립을 원하는 것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왜 최근 이러한 노력이 더욱 주목받는지다. 최근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 학교가 과거와 같이 단순하게 의사 양성 목적이 아니라 의사과학자 양성 목적의 의대 설립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KAIST가 추진하는 의전원의 이름 역시, 기존과 차별화된 과기의전원이 된 것이다.

의사과학자 양성이라는 목적이 더욱 화제가 되는 이유는 2가지이다. 하나는 사회적 측면이다. 미래에는 바이오 헬스 산업이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바이오 헬스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의사과학자가 필요한 시점에 있다. 다른 하나는 필수의료 분야와 공공의료, 지방에 의사가 부족한 현상 때문에 의대 정원의 증원이 논의되면서 새로운 의대 설립이 주목받고 있는 점이다.
 

기존 의대 체제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은 어려운가?

의대에서의 의사과학자 양성은 가능하다. 그러니 실제 의사과학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 학교와 같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이 이를 추진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의과대학의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의사과학자의 숫자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기초의학의 소멸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이러한 상황은 계속 심해지고 있고 현재의 의과대학의 교육 체계에서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의과대학의 신입생 중에서는 연구하겠다는 학생이 많다. 그러나 예과 2년, 본과 4년을 거치며 점점 줄어든다. 이는 한국의 의과대학 자체가 1차 진료 의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의학자라고 불리던 의사과학자의 수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KAIST 의과학대학원이 만들어지며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새로운 루트가 생겼다. KAIST 의과학대학원이 성공하여 의사과학자가 성공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했고 다른 의과대학 역시 이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연세의대를 시작으로, 서울의대가 KAIST 의과학대학원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KAIST가 의사과학자 양성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 것이다. KAIST는 진료보다는 연구에 훨씬 중점을 두는 학교이다. KAIST에 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의대가 세워진다면 의사과학자가 양성될 새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기존의 의과학대학원으로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수는 없나?

의과학대학원은 과기의전원의 설립과 상관없이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을 잘 해왔고 그대로 잘 해낼 것이다. 다만 둘은 차이가 있다. 의과학대학원에서 진행하는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은 이미 의사 면허증이 있는 의사에게 PhD 교육을 제공하는 박사과정 프로그램이다. 이에 반해 과기의전원은 의사가 아닌 이공계 학생을 선발하여 의사과학자로 양성하는 MD-PhD 프로그램이다. 해당 과정에는 의무석사를 양성하는 의전원 코스가 있고 이후 박사 과정에 해당하는 코스가 있다. 의과학대학원은 과기의전원의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담당할 것이다. 

의과학대학원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의사과학자를 만들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졸업생들은 대부분이 병원이나 의대에 돌아가서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교수가 되었다. 따라서 의과학대학원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연구만 하는 과학자로서의 아이덴티티가 더 우세한, 전업으로 연구에 종사하는 의사과학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나아가 바이오 헬스 산업계로 진출하는 의사과학자나 의사공학자는 더 부족하다. 과기의전원은 이러한 의사과학자, 의사공학자를 양성할 것이다. 미래의 바이오 메디컬 산업에는 의료장비 제조 등 다양한 부분이 존재한다. 한국 병원의 수많은 의료 장비는 아직도 미국, 일본 등지에서 만들고 있다. 한국도 이를 만드는 의사공학자가 필요하다. 기존 의과학대학원이 병원에서 활동하는 의사과학자를 주로 양성했다면 과기의전원은 산업계나 연구만 하는 의사과학자, 의사공학자를 양성할 것이다.
 

미국의 의대에서는 한국과 달리 의사과학자가 양성될 수 있는 이유는?

미국 의대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연구 중심 의과대학과 일반의 양성 목적의 의과대학이다. 목적에 따라 학교의 분위기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버드 의대 등의 학교는 1차 진료의를 양성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연구에 좀 더 특화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라 적절한 의사과학자 양성이 가능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은 조금 다른 상황이다. 한국 대부분의 의과대학은 대학 부속병원을 가지고 있고, 의대 졸업생들은 자기 학교의 부속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한다. 이 경우, 한국의 낮은 의료 수가 구조상 전공의의 역할이 매우 크다. 따라서 매년 의과대학은 새로운 의사를 배출하여 부속병원의 전공의를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가 배출되지 못해 전공의가 줄어들면 의료체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그 때문에 자연스레 대학들은 의사과학자보다 의사를 양성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목적이 잘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러한 현상까지 더해져 한국은 의사과학자 양성이 더욱 어려웠다.
 

<의대 설립 계획>

과기의전원 박사과정의 각 전공에 대해 설명한다면?

과기의전원은 크게 3가지 종목의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자 한다. 일단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MD-Bio이다. 다른 하나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공학, MD-Physics이다. 마지막은 데이터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MD-AI 과정이다.
 

임상실습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법적으로 우리나라는 1년에 52주 임상실습 포함한 교육을 해야 한다. 이러한 임상실습은 법적으로 기준을 충족하는 교육 수련병원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KAIST는 현재 수련병원인 원자력병원을 활용하거나 다른 의대와의 협력을 통한 수련병원 이용을 계획 중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원자력의학원과의 협력이다. 원자력의학원이 서울과 부산 기장에 수련병원 규모의 병원을 갖고 있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 외 국내외 여러 대학병원과의 협력 역시 고려 중이다.
 

의과학대학원 문지 캠퍼스 이전 계획과 의대 설립 계획과의 연관성은?

과기의전원 역시 문지 캠퍼스에 설립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과학대학원, 과기의전원이 소재한 문지 캠퍼스를 바이오 메디컬 콤플렉스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다.
 

<의료계 및 교내의 우려에 관하여>

의료계의 반대를 이겨낼 방안은?

의료계에서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미 포화된 개원가에 개원의가 더 많이 나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나 우리가 양성하려고 하는 인력은 진료가 아닌 과학을 하는 인력이다. 개원의로 갈 확률이 낮고 그렇게 만들 예정이다. KAIST는 이 부분을 명확히 하고 의료계의 동의를 얻을 생각이다. 과기의전원은 궁극적으로 의료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과기의전원에서 양성한 의사과학자들이 연구, 창업, 산업 등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어 젊은 의사들에게 새 진로를 열어주기를 기대한다.
 

MD를 가진 졸업생이 개원의로 나갈 가능성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여러 안을 생각 중이다. 면허의 전제조건으로 임상 진료를 못 하게 하는 방안 혹은 북한과 같이 12년 동안 과학자로 의무봉사에 종사하게 하는 방안 등도 언급되었다. 다만 해당 방침들은 헌법상 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여 KAIST가 개원의를 막기 위한 의지가 강하다는 상징적 의견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현실적으로는 의사과학자가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필요하여 키우는 인재이니 학비, 생활비 등을 지원하고 과기의전원 졸업 이후 박사과정 혹은 연구원 등 여러 과학적 활동에 일정 기간 종사하게 만들 방안이 있다. 이 방침의 경우, 병역 특례와 연관해 메리트를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의사가 아닌 과학자가 될 인재들만을 과기의전원이 선발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발을 할 경우에는 능력만을 보고 줄을 세워 뽑지 않는가. 과기의전원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추면 그 이후부터는 의사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평가하여 선발할 것이다. KAIST는 기존 의대처럼 전문의나 전공의 정원을 맞출 필요가 없다. 우리의 선발 방식이나 기준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정원보다 적게 선발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할 수 있다.
 

의대 설립과 관련하여 교내의 우려에 대한 생각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지 않았으나 여러 우려가 존재한다는 바는 잘 알고 있다. 우선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이 왜 갑자기 의학을 하고자 하냐는 의견이다. 그러나 의학도 결국엔 과학이다.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인식 속에서 의학을 다시 과학으로 옮겨오는 것이 KAIST가 해야 하는 일이다. 아직 이러한 일에 성공한 공대가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KAIST가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여러 이해관계에 따른 우려이다. 일례로 전문연구요원 정원 문제가 있다. 그러나 과기의전원이 양성하는 것은 MD이다. 전문연구요원과 별도로 군의관으로서의 병역 특례를 진행할 수 있다. KAIST의 전문연구요원 정원에 영향을 주지 않고 독자적인 병역 특례 TO를 확보할 예정이다.

세 번째는 대학원 진학에 관한 걱정이다. 과거 의전원이 왕성했던 시절에 이공계 졸업생의 상당수가 의전원에 진학하여 이공계 대학원으로 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이 재현될까 걱정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의전원이 있을 때가 이공계 학과로 진학하는 학생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 그러니 KAIST의 과기의전원을 통해서 새로운 이공계 인재를 확보하고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늘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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