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수업이 없는 오후에 차나 커피 같은, 향이 좋은 음료를 한 잔 들고 비어있는 벤치 중 아무 데나 털썩 앉는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는 앞을 지나가는 거위들을 잠자코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에 떠서 지나가는 구름들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때운다.

가끔은 지나가던 거위들에게 내가 거슬렸는지, 나를 쳐다보는 거위들의 시선을 느끼고 자리에서 도망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거위들도 나른한 햇살 속에서 저들마다 잠을 즐기거나 꽥꽥대며 산책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생각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이 때는, 대개 일상 속에서 떠올랐지만 바빠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갈무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를테면, 어제 마셨던 커피가 참 향기로웠다는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하고, 뜬금없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다만, 이런 고민의 대부분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애당초 고민의 시발점이 되는 생각들이 굉장히 포괄적인 주제들이 많을 뿐더러, 한 생각의 끝이 다른 생각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끝을 보려는 것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주제를 지금 당장 마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나를 생각에 얽매이지 않게 만든다. 마치 사진첩 속 어린 시절의 사진을 꺼내볼 때처럼, 나는 나의 생각을 꺼내어 한 귀퉁이에 오늘의 내가 떠올린 문장들을 두어 개 정도 덧붙여서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조금씩 덧붙이다 보면, 간단한 단어 하나로 시작했던 생각은 어느샌가 짧은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분량으로 늘어나 있을 때도 있다. 당장, 지금 쓰고 있는 이 까리용이 그렇다. 갓 말린 이불 속에서 누워있던 찰나 떠올린, 오후를 나른하게 보낼 방법에 대한 작은 생각 하나가 어느새 이렇게 한 편의 글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나른한 오후의 기분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향기로운 커피와 함께 사색의 시간을 보내기를 추천한다. 생각을 갈무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즐거운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