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제공
라이프 제공

대전엑스포시민공원 아트센터에서 3월 5일까지 개최되는 <라이프 사진전: 더 라스트 프린트>에서는 20세기 사진 잡지 <라이프> 지의 아카이브에서 엄선된 101장의 사진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로 2013년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 2017년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기 위하여’라는 주제로 펼쳐졌던 <라이프 사진전> 3부작의 막이 내린다. 마지막 전시 주제인 ‘더 라스트 프린트’는 사진 작가들이 추구했던 궁극의 이미지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잡지에 인쇄되어 나오는 한 장의 사진에는 개인의 삶과 시대의 모습을 파헤치고자 했던 사진작가들의 치열한 취재의식과, 작가와 편집자 그리고 발행인 간의 첨예한 논쟁이 담겨있다.

<라이프> 지는 1936년 창간되어, 포토 저널리즘을 개척한 미국의 시사 잡지이다. 매체의 발달로 쇠퇴하여 2007년 폐간되었지만, 텔레비전이 대중화되기 전인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의 눈으로 활약한 잡지였다. <라이프> 지는 자신의 잡지에 대해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라이프의 목적이다.”라고 소개한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 <라이프> 지의 주제는 참혹한 전쟁과 어린아이의 웃음, 첨단 과학기술과 유행할 패션까지 매우 폭넓었다. 전시된 사진들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들이 보이는 시대의 단면도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LIFE의 사진기자 마가렛 버크-화이트에 대한 설명과 그녀의 주요 기사                                                        ©배가현 기자
LIFE의 사진기자 마가렛 버크-화이트에 대한 설명과 그녀의 주요 기사                                                 
                                                                                                                                 ©배가현 기자

 

인물을 포착하는 방식

사진은 여러 방식으로 인물을 표현한다.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나치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사진에서는 그의 삐뚤어진 증오가 그대로 드러난다. 193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연맹회의에서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해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사진작가 알프레드 에이젠슈테트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전달받자, 그의 표정은 차갑게 돌변했다. 이 일그러진 표정의 사진은, 사진이 찍힌 순간을 넘어 인물에 대한 많은 것을 말해 준다. 1968년 촬영된, 손바닥에 가장 좋아하는 돌을 쥐고 있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사진은 포토 에세이의 일부이다. 사진작가 존 로엔가드는 조지아 오키프를 취재하며, 나이 들고 잊힌 예술가로 여겨졌던 그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다. 그녀의 독립적이며 단순한 삶의 방식과 그것이 녹아든 예술에 매료된 것이다. 한두 페이지 정도의 짧은 기사 계획은 18개월 동안 이어진 13페이지의 포토 에세이가 되었고, 그의 깊이 있는 취재를 통해 대중은 한 예술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되기도 했다. 사진작가 욘 밀리는 피카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는 피카소에게 어두운 공방에서 허공에 손전등으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며, 다중노출로 그 모습을 촬영했다. 사진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빛의 그림은, 예술의 새 시대를 연 피카소 그 자체였다. 밀리의 생소한 요청에 단 15분의 시간을 허락했던 피카소는, 사진에 감동하여 이후 욘 밀리와 함께 빛 드로잉 시리즈를 촬영하였다.
 

파블로 피카소가 손전등을 사용하여 허공에 그린 사람의 모습을 다중노출로 촬영한 사진 (욘 밀리, 1949)©배가현 기자
파블로 피카소가 손전등을 사용하여 허공에 그린 사람의 모습을 다중노출로 촬영한 사진 (욘 밀리, 1949)
  ©배가현 기자

 



20세기, 시대의 관문에서

20세기는 거듭된 전쟁과 냉전의 시대였다. 1945년 미 해병대와 함께 이오지마 섬에 상륙한 종군 사진기자 유진 스미스는 미군이 일본군이 잠복한 382고지를 폭파했을 때, 나무토막과 돌 그리고 사람의 뼈가 섬 위에 흩어지는 사진을 찍었다. 베트남 전쟁을 취재한 종군 사진기자 래리 버로우즈는 전투 중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는 군인의 모습을 찍었다. 전쟁을 목격한 사진들을 보면, “가장 뛰어난 사진도 전쟁이 만들어내는 무서움과 추악함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사진작가들의 참혹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20세기는 과학 발전의 시대이기도 했다. 예일 조엘이 1948년 열린 제35회 파리 모터쇼 전경을 찍은 사진에서는, 형형색색의 자동차와 그 사이로 분주히 구경하는 사람들의 감탄과 열망을 확인할 수 있다. 1962년 사진작가 프리츠 고로가 찍은 사진에서는, 아폴로 달 착륙 프로젝트를 위해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에서 프로토타입 우주복을 시험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유쾌한 사진들도 인상적이다. 인형극에 푹 빠진 아이들, 오토바이 경주를 하는 부자, 골목에서 중절모를 쓰고 보드를 타는 남자의 사진이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활짝 웃는 딸의 사진, 베를린 장벽 반대편에서 떨어진 공을 줍는 군인의 사진 등 유명한 인물과 역사적인 순간에서도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라이프> 지의 사진은 생생하다. 이미 사라진 피사체와 작가, 폐간된 잡지, 이제는 먼 과거가 된 시대이지만, 사진은 이것이 실재했으며, 반짝이며 호흡하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생히 알려준다. 피사체와 사진작가는 각기 다른 저만의 방식으로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전시장에서는 20세기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더 가까이, 말 걸기, 몰입하기

‘읽던 시대’에서 ‘보는 시대’를 이끈 <라이프> 지의 영광에는 많은 사진작가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BIG 8’로 지칭되는 사진작가 8명이 소개된다. 그들에 대한 짧은 소개와 주요 기사, 포토 에세이가 담긴 빈티지 잡지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 곳곳의 벽면에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그들의 원칙이 적혀 있다. 로버트 카파의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은 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아서다”라는 말은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첫 번째 원칙으로 여겨진다. 알프레드 에이젠슈테트는 “셔터를 누르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가 추구한 사진의 진정성을 얻기 위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와 함께하는 일부가 되었다. 이런 노력은 이야기가 담긴 최고의 순간을 찾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좋은 사진은 우연이 아니라, 작가의 오랜 기다림과 몰입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2층 전시장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쌓아 올려진 구식 텔레비전에서는 당시 잡지사 사무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작가들의 영상이 흑백으로 재생된다. 편한 차림으로 카메라를 향해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는 그들을 보면, 20세기 <라이프> 사의 뜨거운 취재 열기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하다.

『라이프』 지 기자들의 모습을 담은 텔레비전 영상 전시물  ©배가현 기자
『라이프』 지 기자들의 모습을 담은 텔레비전 영상 전시물                                            ©배가현 기자

 

 

전시를 더 즐기는 법

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통한 무료 해설이 제공되기에 미리 앱을 다운로드하고 이어폰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2, 3층에서 열리는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전시 사진이 인쇄된 엽서와 도록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특히 사진전의 사진과, 작가 김연수, 김초엽 그리고 시인 박준이 사진을 보고 적은 작품을 함께 엮은 도록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새롭다. 작품 몇 편은 오디오 클립으로 들을 수 있다. 전시 관람 후, <라이프> 지의 사진을 더 보고 싶다면, <라이프> 지의 웹사이트를 방문하거나 구글 도서에서 옛 발행본을 보는 방법이 있다. 구글 도서에서는 1936년부터 1972년까지의 발행본 전문이 무료로 제공된다.

장소 | 대전엑스포시민공원 아트센터
기간 | 2022.11.25~2023.3.5
요금 | 성인 15,000원
시간 | 화 - 일요일 10:00 - 19:00
해설 | 네이버 오디오 클립
문의 | 02) 332 8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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