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관조하는 취미가 생겼다. 카페의 큰 창문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멍때리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창틀을 경계 삼아 사람들이 저마다의 기운을 지닌 채 드나드는 것을 보는 게 참 재미있다. 창틀의 왼쪽에서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른쪽에서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할머니,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들,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슬리퍼를 끌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이 저마다의 표정으로 내가 모르는 그들의 목적지로 간다. 난 종종 지금 저 사람들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 무슨 대화를 하는지를 상상하곤 한다. 어쩌면 나의 취미는 관조가 아니라 공상일지도 모르겠다.

중간고사가 끝난 가을 즈음 나는 단골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시험 기간에는 학교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기에 단골 카페는 아주 오랜만에 방문하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절반 녹았을 때 아주 어린, 5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정면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파란색 바지를 입은 아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보통은 사람들이 좌우로 걸어가지, 이렇게 직접 눈이 마주치는 경우는 없었다. 너무 뻘쭘한 나는 책으로 눈을 옮겨 아이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적당히 눈을 피하면 아이가 지나갈 줄 알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 나는 소설책에 몰두했다. <일인칭 단수>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단편을 3개 정도 읽었을까 나는 그 남자아이가 갔겠거니 하고 다시 창문을 바라보았다. 남자아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아이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 아이 부모님은 어디에 계실까?’, ‘그 아이는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보는 걸까?’. 나는 그 아이를 조금 더 자세히 볼 걸 하고 아쉬워했다. 

시간이 더 지나 기말고사가 끝났다. 이번에도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날은 유독 날씨가 추웠고 창문에는 물이 맺혀 밖을 뚜렷하게 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을 읽었다. 책의 중반부에 주인공이 비 오는 날 레코드 가게에서 멍 때리는 장면을 읽을 때였다. 주인공에 이입하여 나도 뿌연 창 밖을 보았다. 그 순간 20대 중반의 코트를 입은 여성분이 담배 연기를 뱉으며 빠르게 걸어갔다. 강한 인상과는 반대로 얼굴은 분명 앳돼보였다. 옷깃을 곧게 세운 채로 뚜벅뚜벅 지나가는 여성 분의 모습은 당장 영화에서 폭발장면을 뒤로 한 채로 걸어가는 주인공 같았다. 인상이 강렬해서 아주 찰나의 순간만 봤는데도 디테일하게 기억이 난다.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폭발적으로 맴돌았다

모르는 사람의 찰나의 인상들이 나의 상상을 강하게 자극한다. 내가 이 취미를 즐기는 큰 이유 중 하나이다. 내가 보는 모든 사람을 기억할 수는 없을 텐데 그중에서도 위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은 생생해서 더 즐겁다. 그 사람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건강했으면 좋겠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기억을 얻는 걸까. 다음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1Q84>를 읽어야 겠다. 아주아주 두꺼운 책이기에 분명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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