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바라보다 구름에 시선이 뺏겨버린 자여 변치 않을 북극성의 존재를 잊지 말라.

어떠한 이야기들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불쑥 떠오르곤 한다. 완벽한 왕이 되고 싶었으나 신발 장인으로 남은 어리석은 임금에 대한 동화도 최근 그렇게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옛날 옛적 머나먼 왕국에 어린 왕이 있었다. 모든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라면 백성들보다 왕인 자신이 그들의 일을 잘 알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린 왕은 완벽한 왕이 되고자 가장 하찮고 사소한 일부터 정복해보기로 결심했다. 그가 보기에 꽃신을 만드는 일이 그러하였으므로, 어린 왕은 꽃신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꽃신 만들기는 보이는 것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가죽을 꿰고 밑창을 붙이고 장식하는 그 모든 일을 하면 할수록 그 작업의 정교함과 자신의 부족함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오만을 인정하기 싫었던 왕은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흐르고 가뭄과 홍수와 외적의 침입이 끊기질 않을 동안 내내 꽃신만을 붙잡고 있었고…드디어 가죽을 처음으로 완벽하게 꿸 수 있게 되었을 때, 반란이 일어나 왕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짤막하고 뻔하고 교훈적인 이야기. 누군가는 타인의 일을 하찮게 보다 큰코다친 왕을 비웃을 테고, 다른 누군가는 지도자가 지녀야 할 핵심인 통솔과 외교를 등한시하고 왕으로선 부수적인 일인 신발 제작에 집중한 그 선택을 비난할 수도 있을 테다. 반면 누군가는 왕이 신발 만드는 작업을 그토록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은 결국 왕으로 있을 때보다 신발을 만들 때가 더 즐거웠기 때문이 아니냐며, 환경에 의해 강요된 꿈과 어떠한 이유로든 스스로 선택한 꿈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왕의 처음 의도가 좋은 군주가 되는 것이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 누군가는 선의로 시작한 일이 모두 좋은 결과로 끝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릴 적 읽고 잊어버린 이 이야기가 다시 내게 떠올랐을 때, 내게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왜, 지금인가? 왜 석사과정을 한 학기 마치고 대학원에서 첫 방학을 맞은 지금 이 시기에 이 이야기가 생각났을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오래된 욕망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알고 행동하는' 것이다. 단순히 지시대로 움직일 때도 그 지시의 목적과 지시자의 구상 속 나의 역할이 궁금했고, 내가 스스로 한 선택도 그 선택이 사회와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고 싶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단순히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교과서에 그렇게 하라고 쓰여 있으니까’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또한 그 행동의 영향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그러나 모두에게 그러하듯 시간과 자원은 제한되어 있고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모든 걸 알고 싶다는 욕망은 때론 아주 사소하고 부수적이며 일의 핵심이 아닌 요소에 지나치게 집중하게 만든다. 이는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곤 한다. 이야기 속 왕이 그러했던 것처럼.

무의식중에 계속 그러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다가오는 마감과 달성해야 하는 목표와 같은 현실과 나의 욕망 사이에서 나는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앞서 언급한 이야기는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잠깐의 의문을 일으켜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나날을 생각해 보도록 나의 주의를 환기해 주었다. 아직 이 모든 고민의 답을 찾지는 못하였지만 남은 대학원 생활 속에서 일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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