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처음 경험하는 일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 미지가 주는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감이 뒤섞여 있어서인지, 새로운 일을 마주할 때는 어쩐지 복잡한 감상이 든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반가운 기분이 먼저 든다. 이번 연휴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며칠 전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십 년 만에 다시 만났다. 둘 중 한 사람이 멀리 이사했거나 크게 다투어서는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한 명 정도 있었을 법한 서먹하지도 절친하지도 않은 친구. 표면적으로 우리는 그 정도 사이였다. 이런 관계는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렵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멀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작은 우연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그렇게 영영 잊힌 관계 중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늦은 평일 새벽이었다. 나는 공연, 특히 뮤지컬을 좋아한다. 학교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좋아하는 배우가 하는 뮤지컬을 보러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날도 완벽한 공연을 보고 행복한 채로 인스타그램에 감상을 남기는데, 누군가 팔로우를 요청했다는 알림이 떴다. 의아한 마음으로 알림을 누르자 익숙한 얼굴과 이름이 창에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아드레날린에 반쯤 취해 두려움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평소와는 달리 십 년의 간극을 가뿐히 무시한 채 친구에게 DM을 보냈다.

연락을 하고 나서야 이성이 돌아왔다. 내가 친구를 단번에 알아봤다고 해서 친구가 나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친구의 답장이 돌아왔다. 친구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잠결에 버튼을 잘못 눌렀는데 바로 연락이 왔다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새벽 세시까지 내리 연락을 하다가 본가에 돌아가면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는 오히려 이전보다 편안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저녁을 먹으며, 밤바다를 산책하며 십 년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하면서 우리 둘 다 서로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십 년 만에 확인한 예감에는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었다. 우리는 바로 어제 만난 사이처럼 즐겁고 편안했다.

십 년 전에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 삶의 궤적을 따라 조금씩 깎이고 풍화되며 서로에게 잘 맞는 조각이 되었다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인연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덕분에 이제 나는 새로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공연히 반가운 기분이 먼저 든다.

반가움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다. 합격 소식일 수도 있고, 뜻밖의 행운일 수도 있으며, 십 년을 지나 다시 만난 인연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새해에는 모두에게 반가운 소식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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