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마(端島)는 일본 나가사키 근해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도 불리는 이 섬은 메이지 시대부터 미쓰비시 기업이 해저 터널을 뚫고 석탄을 캐던 탄광 산업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채굴된 최상급의 석탄은 일본의 산업화를 견인했을 뿐 아니라,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전투기 연료로도 쓰였다. 견고한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하시마의 건물군은 근대적인 설비에 옥상 정원까지 갖추고 있어, 탄광 노동자의 수준 높은 주거 환경을 선전하는 데 활용되며 건축사적으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하시마의 또 다른 이름은 살아서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일명 ‘지옥도’였다. 식민지 노동자들은 하시마에 강제 징용되어 일상적인 위험과 차별, 굶주림과 폭력에 시달리며 강도 높은 노동 착취를 겪었다. 채광과 통풍이 좋은 건물의 고층은 회사 관계자들 차지였고, 한국에서 끌려온 노동자들은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이나 바닷물이 들이치는 열악한 주거 공간에서 지내며, 하루 12-16시간 동안 비좁은 갱도에서 중노동을 강요당했다. 부상을 입어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죽기 전까지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탄광업이 사양 사업이 되면서 무인도로 버려진 하시마는 아이러니하게도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식민지 시기 강제 노동의 참혹한 기억은 철저히 망각되고, 미쓰비시 기술력의 집대성이자 일본 산업화의 전진기지로서의 가치만이 기억된 것이다. 역사를 증언해줄 피해자들은 이제 상당히 고령이 되었고, 생존자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난 1월 12일, 우리 정부는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을 일본측 가해 기업을 대신해 한국 기업이 대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 이후 악화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낸 해법이다. 한국 대법원 결정에 대한 일본의 반발이 수출 규제로 이어지면서 한일 관계가 급격히 냉랭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갈등을 끝내고 한국과 일본이 우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양국 모두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북핵 문제 대응을 위해서라도 한국과 미국, 일본 3국이 안정적인 안보협력을 지속하는 것은 절실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를 당면한 정치 논리, 경제적 이해로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 상태로 협상이 진행된다면, 단기적으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시킬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분쟁의 또 다른 불씨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 식민지 지배 자체가 불법이 아니라는 정당성을 일본 측에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해법에는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일본 측의 사죄와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이 빠져있고, 따라서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가해자의 반성과 올바른 역사의식이 부재하다면, ‘지옥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남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피해자의 동의와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과거사 청산이란 원칙을 갖고 철저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