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20명의 학생들이 총 70편의 시를 KAIST 문학상에 투고해 주었다. 작년보다 투고 편수는 조금 줄었지만, 각각의 시편들은 좀 더 개성적 심상과 내밀한 감정을 담아 내려는 시도를 보여 주고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아직은 팬데믹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생활 세계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탓일까. 상당수의 투고 작품에 세계, 사회,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섬세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는 소재면에서의 단순성, 뜻 모를 수사적 표현의 남발, 단편적 인상의 과잉 묘사로 나타나곤 한다. 세계를 대면하는 주체의 독자적 시선이 부각되는 것은 시의 장르적 본령이지만, 이는 예술적 형상화의 기본 원칙인 심미적 문제의식의 소통을 전제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성의 시적 관행을 답습하지 않는 개성적인 시각과 전달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의 깊이가 좀 더 균형 있게 형상화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당선작인 이승민의 <가을의 별>은 이별하는 존재들에 대한 화자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계절의 순환에 따른 ‘나무의 자람’과 ‘잎새의 떨어짐’은 인과의 사슬에 묶인 필연적 현상이지만, 화자에게 잎새의 떨어짐은 좀 더 생성적인 의미를 갖는 사건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조만간 찾아올 ‘눈 덮일 나날’을 위한 것이고, ‘하고픈 말’을 담고 있는 것이며, ‘나무를 사랑했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즉, 모든 잎새는 필연 이면에 어떤 의지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것은 ‘지는 잎새’로서 차갑게 식어 사라지는 사물이지만 동시에 고유한 마음을 담은 ‘떨군 잎새’로서 각자에게 불그레한 흉터로 남는 대상이 된다. 이렇게 이 시는 이별의 감정에 대한 승화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겠다. 잎새가 환기하는 하강의 심상이 제목에서 별이 환기하는 상승의 심상으로 전도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우리가 시를 읽고 쓰는 이유 또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반복하고 단편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비록, 감정의 승화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는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언어를 통해 묵은 감정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하고 그로부터 그 감정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나로부터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시는 그러한 시 창작의 근본적 동인을 독자에게 담담한 어조로 상기시켜 준다.

가작인 박성후의 <청색편이>는 과학적 현상을 존재 간의 관계 문제로 연결한 접근이 신선했다. 제목인 청색편이(blueshift)는 파원(波源)과 관측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 때 관측되는 현상으로서, 거리가 멀어질 때 관측되는 현상은 적색편이(redshift)라고 부른다. 이는 천문학에서 천체 간의 상대 운동을 결정할 때 주로 쓰이는 개념이지만 이 시에서는 화자에게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안겨 주는 낯선 대상들과의 관계를 비유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백신을 만들기 위해 매년 수십만 마리의 투구게들이 푸른 피를 채혈당하고 다시 바다로 방류되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투구게가 처한 이러한 비극적 현실은 화자에게 ‘푸르게 썩어가는 두 다리’, ‘서슬 퍼런 그들의 얼굴’로 다가오며 이로부터 화자는 얼굴이 붉어지도록 달아난다. 인간의 잔혹함을 외면하려는 화자의 시도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할 것임은 도피의 종착지인 시리우스마저 파랑이 ‘잠시’ 없는 곳일 뿐이며, 발을 잘못 디디면 다시 파랑에게 추격당할 것이라는 위태로움에서 간접적으로 상기된다. 시상의 전환이나 확장이 조금 어색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파랑색에 대한 일상적 심상을 비틀면서 청색편이, 푸른 피, 청색증의 심상을 틈입시키고, 이로부터 자연을 대하는 현대인의 태도를 성찰할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작품으로 보았다.

두 작품 모두 참신한 언어 감각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실존이나 현대 사회와 연관된 본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우수성을 가르기가 어려웠다. 다만, 이승민의 작품에서 표현에 대한 섬세한 정련, 주제 의식에 대한 객관화 시도가 좀 더 두드러졌다는 점과 당선작 외의 투고작들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시적 형상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을 좀 더 높게 평가하였다.

그 밖에 훌륭한 성취를 보인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김민석의 <불협걸음>은 어긋남의 순간을 인상적이고 복합적인 비유로 잘 포착하였고, 백승주의 <솔직한 고백>은 카세트테이프의 작동과 소통의 단절을 연결 짓는 연출이 신선했다. 이태영의 <맥화>는 절제된 표현을 통해 역동적인 리듬감을 선보였으며, 양우현의 <운명론>은 일상의 언어적 습관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현상의 의미를 포착하려는 시도가 긍정적으로 읽혔다. 이들 작품도 수상작으로 선정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지만, 수상작에 비해 언어의 정제나 문제의식의 전달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 시대에 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새로움에 대한 누군가의 고투를 그저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데이터로 순식간에 편입시키는 것이 인공지능의 속성이라면, 더 이상 표현의 새로움만으로 시라는 장르가 독자에게 어떤 감동을 전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삶과 세계에 대한 감성적 이해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그것을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늘 새롭게, 더욱 근본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작가의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 시가 갖는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그로부터 어떤 시가 필요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 많은 학생들의 도전에 깊은 찬사를 보내며, 수상자들에게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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