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기자
©박정민 기자

 주류(酒類)는 인간이 농경 생활을 시작한 때로부터 인간과 함께해왔고, 많은 사랑을 받으며 역사 속의 많은 비화를 만들어낸 아주 오래된 음료입니다. 인간은 발효로 인해 알코올이 함유된 술은 알코올이 없던 다른 음료들에 비해서 보관하기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보관할 용도로 술을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런 술의 역사와 더불어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술에는 어떤 과학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최초의 술은 언제 등장했는가

 지금까지 최초의 술이 등장한 것은 적어도 농경 생활이 시작된 이후일 것으로 추측해왔습니다. 이는 고고학자들이 약 8,000년 전에 고대 이집트에서 양조 기술을 사용하였다는 증거를 발견했던 점, 수메르 문헌에 작성되어 있는 다양한 양조 방법들과 맥주, 와인 등 인간이 만들어온 대다수의 술의 주 원료가 농산물이라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고고학자들이 기원전 1만 1000년경 인류가 다 먹지 못한 남은 포도를 건포도로 두고 말려 먹다가 포도 껍질에 존재하는 이스트(Yeast)에 의해 포도가 발효되어 생긴 음료를 마신 것이 최초의 포도주라고 보고, 해당 시기를 술의 기원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만, 이 또한 농경 생활이 시작되는 신석기 시기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술은 농경 생활이 시작되기 전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에 새롭게 발견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북부 카멜 산의 라케페트 동굴(Rakefet Cave)에서 발견된 3개의 돌 절구가 그 증거입니다. 학자들은 이 3개의 돌 절구가 약 1만 3,700년 전에 맥주를 양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음을 확인했고, 이로부터 절구들이 아마도 구석기 말기,신석기 초반을 아우르는 중석기 시대에 이스라엘이나 시리아 등 지중해 연안에서 수렵•어로 생활을 하던 나투프 문화(Natufian culture)의 인간들에 의해 사용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는 농경 생활이 시작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술의 양조가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지금까지의 통설보다도 훨씬 이른 시기에 술의 양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발효의 원리를 찾아서

 기본적으로 최초의 술부터 현대의 술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술은 효모(酵母)를 사용하는 알코올 발효(醱酵)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정확히는, 과실 중에 함유된 과당 혹은 곡류 중에 함유되어 있는 전분을 전분당화효소인 다이아스테이스(Diastase)로 당화시킨 후 효모인 이스트(Yeast)를 작용시켜 알코올과 탄산가스를 만드는 원리를 따릅니다.

 발효의 원리 자체는 최초의 술에서도 사용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술을 양조하는 데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효의 원리는 오랜 시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사람들은 술을 제조하면서도 어떻게 술이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오리무중에 빠져있던 발효의 원리는 최초의 술이 양조된 때로부터 약 10,000여 년이 지난 1800년대가 되어서야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1700년대에 현미경을 발명한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막 발효가 끝난 맥주 한 방울을 렌즈를 이용하여 개별 효모 세포를 관찰한 이후 효모 세포의 모습을 직접 그려 보낸 적이 있었으나, 그림을 받은 런던왕립학회 측의 학자들 중 그 누구도 효모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었습니다. 그나마, 우리에게 산소와 수소의 발견자로 유명한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당이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바뀌는 과정을 최초로 정량분석하는 과정에서 효모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라부아지에의 실험에서 효모는 반응 전후에 외형이나 무게에 전혀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별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1803년 프랑스학사원에서 발효의 실체를 밝히는 사람에게 1킬로그램의 순금 메달을 수여하겠다고 밝히고도 34년이 지난 1837년에야 우리에겐 신경계의 슈반 세포로 익숙한 독일의 생리학자, 테오도어 슈반이 발효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슈반은 그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레이우엔훅의 개별 효모 세포 관찰 그림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레이우엔훅의 그림을 보고 효모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을 시작했고, 이윽고 효모가 당을 먹고 에탄올을 배출할 뿐만 아니라 생존에 질소를 사용하는 무성생식 생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다수의 화학자들은 현미경의 성능이 그리 좋지 않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관찰하는 경우가 잦았던 점과, 발효는 화학적 과정이라 미생물이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효모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그들은 효모가 발효를 일으킨다는 생물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간단히 말해 어떤 벌레는 설탕을 먹고 장에서는 알코올을, 배뇨기관에서는 이산화탄소를 배설한다.”라고 비꼬아서 말할 정도로 어이없는 설명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약 20년간 이어지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효모의 존재와 발효의 관계성에 대한 논쟁은, 당시 30대의 풋풋한 과학자였던 루이 파스퇴르가 제시한 기발한 실험에 의해 비로소 그 끝을 알렸습니다. 파스퇴르는 설탕과 영양 미네랄이 든 플라스크를 두 개 준비하고 한 플라스크에는 발효가 일어난 통에 들어있던 찌꺼기를, 다른 하나에는 젖산 발효가 일어난 통에 있는 찌꺼기를 넣고 생성되는 물질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발효가 일어난 통에 든 찌꺼기를 넣은 플라스크에서는 에탄올이 생성되었으나, 젖산 발효가 일어난 통에서 채취한 찌꺼기를 넣은 플라스크에서는 에탄올이 생성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부터, 파스퇴르는 분명히 효모가 발효에 관여한다는 슈반의 가설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에 더불어, 1890년대에 접어들어 에두아르트 부흐너라는 화학자가 자신의 형인 생물학자 한스와 함께 효모 추출물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고농도 설탕 용액과 효모 추출물을 섞으면 기포가 발생하며 발효가 일어남을 관측했습니다. 부흐너 형제는 이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시도를 통해 마침내 효모 추출물이 오랜 시간 생존할 수 있게 만든 뒤에 정제한 효소 복합체를 추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복합체의 실체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이를 토대로 생화학이 성장하고 수십 년 뒤에 효모 세포 내에서 어떤 기작을 통해 발효가 일어나는 것인지 파악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술의 맛과 향은 어떻게 나타날까

 술의 맛과 향으로 대표되는 술의 질은, 사람이 느끼는 순서대로 향과 맛, 그리고 뒤끝(Finish)로 평가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일부러 정제를 반복하여 알코올만을 얻어내려는 게 아닌 이상, 대부분의 술에는 수백 가지 향기 성분이 미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술에서 대부분의 함량을 차지하는 에탄올은 물질의 휘발성으로 인한 자극을 제외하고는 무색, 무미, 무취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술의 맛이나 향은 거의 대부분이 미량 포함된 향기 성분들에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술을 마실 때 향기 성분들로 인한 향과 맛을 느끼는 데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존재하기에, 모두 같은 술을 마시더라도 조금씩 다른 맛과 향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위스키나 브랜디 등 오크통에서 숙성 기간을 거치는 술들은 숙성 기간을 거치는 동안 통에서 색이 우러나와 연한 갈색빛을 띠게 됩니다. 오크통은 제작 과정에서 내부를 불로 그을려 태우면서 오크통 내부의 표면을 미세한 숯 알갱이와 그을린 조각으로 만드는데, 이 그을린 조각들이 오크통 내부에서 술을 숙성시킬 때 술에 갈색 색소•목질 성분인 리그닌, 방향족 분자들을 다수 우러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이 때, 숙성 과정을 얼마나 오랜 기간 거치느냐에 따라 방향족 분자들을 포함한 향미 성분들이 포함되는 정도가 달라지며, 일반적으로는 약 11~12년 숙성시켰을 때 맛과 향이 잘 우러나와 숙성이 완료되었다고 평가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더 오랜 기간 숙성시켜 맛과 향을 진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술의 종류에 따라 목통에서 원하지 않는 성분도 지나치게 우러나와 풍미를 손상시키기도 하므로 숙성을 더 오랜 기간 수행할 것인지는 원하는 술의 맛과 향이 어떤지에 따라 달라지곤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 어떤 술이 몇 년 숙성되었던 술인지로부터 해당 술이 지니는 향과 맛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술, 다른 맛, 왜 그런걸까

 술을 마실 때, 같은 술인데도 마시는 날에 따라 맛이 다르고, 마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술을 달게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점입니다. 평소 술을 마실 때 이런 상황을 겪어봤다면, 이는 술병에 든 술마다 맛이 다른 것보다도 사실 사람마다 유전자가 다름에서 기인한 차이점으로, 유전자 중 TAS2R38이라는 대립유전자의 종류가 PAV 종류인지 AVI 종류인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사람들 중 TAS2R38 대립유전자가 PAV 종류인 사람은 쓴맛을 비교적 더 강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같은 술을 마시더라도 쓴맛을 중점적으로 느끼는 반면, AVI 종류인 사람은 비교적 쓴맛을 느끼는 정도가 덜하기 때문에 조금 더 단 맛이 난다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대다수의 술이 온도에 따라 나는 맛이 상당히 달라지는데, 이는 술의 주 성분이 기화가 잘 일어나는 에탄올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술의 온도가 높아 미지근한 상태일수록 알코올이 더 잘 기화되어 술의 전체적인 향과 맛에서 향기 성분들보다는 에탄올에 의한 향과 맛의 비중들이 커지게 되어 쓴맛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위스키나 브랜디 등 도수가 높은 술의 음용 시 추천해주는 레시피를 보면, 대부분 잔을 차갑게 만드는 칠링*(Chilling) 과정이나 얼음을 곁들어 술의 온도를 낮게 유지하기를 권하곤 합니다. 물론, 일본에서 즐겨 마시는 사케나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를 추천하는 위스키처럼 온도를 낮추지 않고 마시는 것 또한 술의 맛과 향을 색다르게 즐기는 하나의 개인적 취향이 될 수 있습니다.

 

 술은 약 10,0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함께 해오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음료인만큼, 개인의 선호도에 맞출 수 있는 다양한 레시피와 술의 종류가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있는 상황에 맞는 술은 때로는 달달한 칵테일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분위기 있는 곳에서 바텐더에게 “젓지 말고, 흔들어서”를 외치며 주문하는 마티니가 될 수도 있으며, 어떨 때는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즐기며 가볍게 즐기는 맥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모든 술은 적당히 마셨을 때 최고의 즐거움과 맛, 향을 선사할 것이기에, 언제 어디서 술을 마시건 자신의 주량을 알고 넘치지 않게 즐기며 마시는 것이라는 걸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칠링*(Chilling)
완전히 또는 반조리한 음식을 냉장고에 넣기 전에 얼음물에 넣어 음식을 식히는 과정으로,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는 뜻의 영어 단어(Chill)에서 유래되었다.

참고문헌
<프루프:술의 과학>, 아담 로저스, MID(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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