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마킨 - 「어느 삶의 음악」, KAIST 도서관 사서 추천도서

(주)예스이십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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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내리던 어느 밤, 화자는 우랄 지방의 한 기차역에서 무기한 연착된 모스크바행 기차를 기다린다. 매서운 추위에도 대합실의 군중은 불평 하나 없이 각자 자리를 잡고 깊은 잠에 빠진다. 화자는 다소 경멸적인 태도로 그들을 ‘호모 소비에티쿠스’라 칭한다. 그들은 스탈린 체제에서 끊임없는 전쟁을 겪으면서 부조리한 상황을 참아내고 희생을 감수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화자는 자아를 상실한 이들을 비판하며 그 집단에서 자신을 분리해내려 노력한다. 그 순간, 어디선가 흘러오는 음악 소리를 듣게 된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반한 화자는 소리의 출처를 쫓아 걷다가 연주의 주인공인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다음 날 아침, 기차에 오른 화자는 우연히 노인과 같은 객실을 쓰게 된다. 기차가 모스크바를 향해 달리는 동안, 간밤의 피아니스트는 화자에게 자신의 삶을 들려준다.

 피아노를 연주하던 노인의 이름은 알렉세이 베르그다. 과거의 청년 베르그는 자신의 첫 연주회를 앞두고, 반동분자로 몰린 부모님이 집에서 체포되는 것을 목격한다. 베르그는 군의 위협을 피해 우크라이나의 외진 마을에 사는 이모 부부의 집으로 향한다. 건초 창고의 한 은닉처에서 몸을 숨기며 지내지만, 군인들은 이모의 집까지 들이닥친다. 잡힐 위기에 처하고 도피하기를 반복한 베르그는 결국 한 군인의 시체에서 그의 옷과 신분을 훔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죽은 몸처럼 살아가던 베르그는, 과거를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모든 시련이 시작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피아노를 연주한다. 결국에는 수용소에 잡혀갔지만, 베르그가 익명을 벗어 던지고 연주하는 장면은 오랜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빠져나온 설움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베르그는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였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그는 호모 소비에티쿠스였다. 베르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화자는 사뭇 다른 태도로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바라보게 된다. 그들의 맹목성을 비웃던 내면의 목소리는 점차 사그라지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 온 그들의 강인한 영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된다. <어느 삶의 음악>의 저자 안드레이 마킨은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작가다. 러시아에서 나고 자랐으며 1995년에 프랑스로 망명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마킨의 작품에는 스탈린 시대에 고통받은 영혼들에 대한 묘사가 가득하다. 

 마킨 특유의 섬세하고 세련된 문체는 고전적이라는 평을 받으며 톨스토이, 스탕달, 프루스트와 비견되기도 한다. 이 책 또한 마킨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역사 속에서 으스러져 간 한 예술가의 삶을 마킨만의 시적인 문장들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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