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그레이 - 「아마겟돈 타임」

 

㈜UPI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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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은 자유로운 화가를 꿈꾸는 장난꾸러기다. 학교에서는 흑인 유급생인 죠니와 마음이 맞아 취향과 꿈을 공유한다. 반면 부모는 항상 폴에게 엄격하게 대하며 폴이 공부에 매진하길 원한다. 오로지 할아버지인 아론만이 폴의 재능을 알아보고 응원해준다. 폴의 가족은 우크라이나계의 유대인이다. 특히 아론은 유대인에 대한 거센 차별 속에서 미국에 정착했다. 그래서 폴의 부모는 자식이 미국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살길 바라며 가끔 폭력적일 정도로 강한 교육열을 드러낸다. 결국 폴과 죠니가 호기심에 사고를 치자, 부모는 공립학교에 다니던 폴을 폴의 형이 다니는 비싼 사립학교로 보낸다. 친구와 떨어져 새로운 학교 생활을 시작한 폴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면서도, 형편에 비해 무리하여 지원해주는 부모의 기대를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아마겟돈 타임>은 <애드 아스트라>를 연출한 미국의 독립영화 거장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신작이다. 자신이 실제로 살았던 1980년대의 뉴욕 퀸스를 배경으로 하여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을 받아 공개 후 약 7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는 등 호평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인종차별과 자본에 따른 특권 등 여러 사회 문제를 사춘기 소년의 성장통 이야기 속에 담았다. 동시에 주인공 폴의 주변인들을 통해 인종 문제를 대하는 다양하고 모순적인 태도들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단순히 강자와 약자의 흑백 구도가 아니라, 약자가 약자를 외면하는 장면들이 계속 등장한다.

 ‘아마겟돈’이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단어로, 최후의 날에 세상이 선과 악의 전쟁터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즉 아마겟돈은 서양권에서 재앙과 종말, 그리고 인류 최후의 전쟁을 의미한다. 영화 제목이 <아마겟돈 타임>인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폴이 청소년기의 일탈을 거치면서 느꼈을 혼란이다. 친구와 떨어져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마주한 전혀 다른 세계는 폴의 입장에서 ‘아마겟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두 번째는 1980년대 미국의 시대상이다. 당시에 신자유주의를 내걸며 대통령에 당선된 레이건은 ‘아마겟돈’이라는 표현을 핵전쟁과 연관시켜 자주 언급했다. 이처럼 폴이 자라난 미국 사회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만연해 있었다.

 영화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인 만큼 제작 과정도 감독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감독이 살았던 집에서 불과 27미터 떨어진 곳에서 촬영했으며 등장인물들의 의상도 영화의 배경과 동시대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특히 할아버지인 아론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할아버지가 썼던 페도라, 피우는 담배 종류, 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채우는 습관 등 그레이 감독만의 디테일은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실존했던 한 인물의 세계를 목격하고 있다는 인상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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