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안 셔젤 - 「위플래시」

(주)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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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봤을 영화, 데미언 샤젤의 <위플래쉬>의 마지막 장면을 본 사람들의 감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어느 드러머와 엄격한 교수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보는 견해이다. 일류가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 앤드류는 플레처 교수와의 갈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만 끝내 이를 극복하고 교수와 화합하며 최고의 연주를 선보이며, 결국 플레처는 다소 모질긴 하지만 참된 스승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꿈을 가진 학생과 괴짜 교수의 이야기 구조는 상당히 흔한 클리셰이며, 대부분 교수의 교육관을 이해한 학생이 열심히 노력한 끝에 꿈을 이루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플레처는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를 최고가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과정의 일환이라고 정당화하고 있으며, 결국 앤드류를 자신이 원하던 제2의 찰리 파커로 바꾸어 놓는다. 비록 약간의 찌질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초반부의 앤드류는 그래도 웃음을 지을 줄 알았다. 그러나 플레처의 밴드에 들어간 뒤로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을 보이며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손에 피가 흐를 정도로 오직 드럼에만 몰두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앤드류의 모습은 마치 악마와 계약한 사람의 클리셰를 연상케 한다. 동화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앤드류는 끝내 자신을 잃고 붕괴되어버리며 마지막 장면에서 문 틈새로 비춰지는 아버지의 표정이 그 참담함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앤드류는 교수에게 희생된 불쌍한 피해자인가? 다시금 동화책 속을 들여다보면 악마와 계약하는 경우에는 악마의 속삭임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과 반대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의로 계약하는 사람, 두 부류가 있다. 앤드류를 교수의 가스라이팅에 당한 피해자로 볼 수도 있지만,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스스로 영혼을 바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플레처 역시 완전한 악인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인물일 수도 있다. 제자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흘렸던 눈물이 과연 인간적인 사랑의 증거였을지, 자신의 ‘작품’을 잃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지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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