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일, 레고랜드 건설을 주도한 강원중도개발공사(GJC)는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2020년 발행한 2,050억 원어치의 어음에 대해 자체 상환이 불가능함을 보고하였다. 이 기업어음에 대해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에, 투자자는 강원도가 채무를 대신 갚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9월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강원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GJC에 대해 기업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강원도가 직접 채무를 상환하는 대신 GJC의 자산을 팔아 빚을 갚겠다는 것이다. 도지사의 발언은 채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용을 크게 악화하여 채권 시장에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강원도지사의 기업회생 신청, 무엇이 문제인가

 도지사의 발언 이후 지난달 5일 2,050억 원 규모의 어음이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투자자의 불안감이 커졌다. GJC의 기업회생이 신청되면 돈을 돌려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GJC의 자산이 채무 금액을 상환할 수 있을 정도로 평가될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채권시장에서 신용도가 높은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전반적인 금융 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하락했다. 

 결국 지난달 17일, 우량기업(AAA 등급)인 한국전력공사가 발행한 회사채 4,000억 중 1,200억 원어치가 응찰자가 없어 유찰되었으며, 같은 등급인 한국도로공사의 채권도 전액 유찰되었다. 투자자들이 불안감으로 인하여 채권을 구매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는 사업을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 경우에 따라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냉각된 금융 시장으로 인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거나 더 많은 이자를 지불하고 돈을 빌려와야 했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위기의식이 연쇄적으로 시장에 퍼졌다.

 

뒤늦은 대응에도 위기는 심화하고 있어

 지난달 21일, 김 지사는 기존 발표를 번복하여 2023년 1월 말까지 2,050억 원의 어음을 전액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달 23일, 정부는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시장 안정 방안을 논의하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0조 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금융시장 불안심리 확산과 유동성 위축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행정안전부는 13개 지방자치단체의 보증채무 이행 의사를 확인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강원도지사의 발표로 시작된 지방자치단체의 채무 이행에 대한 불안을 종식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발표 다음날인 10월 24일 신용등급 AAA의 한국가스공사와 AA+의 인천도시공사의 채권이 유찰되었고, 25일 한국전력공사의 채권이 다시 유찰되는 등 정부의 발표에도 채권 시장에서 투자자의 불안은 해결되지 않았다. 지난 10일 한국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2022년 10월 장외채권시장 동향’에 따르면 10월 채권 발행 규모는 55조 2,000억 원으로 지난달(64조 원)보다 8조 8,000억 원 감소하였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금융지주는 95조 원을 금융시장 안정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하였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사태를 비관적으로 관망하고 있다. 경색된 투자 심리가 장기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국내 기업에 대한 신용 등급이 하향 조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신용 등급이 하락하면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사의 발언이 불러온 금융위기를 놓고 책임론이 불거지다

 김 지사가 채무 상환을 거부하였던 2,050억 원은 연간 8조 규모인 강원도 예산 내에서 충분히 조달이 가능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2,050억 원을 강원도 예산 내에서 조달하여 갚았으면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를 채권단에게 채무 이행을 거부한 발표 하나로 정부 및 기타 단체가 약 200조 원의 예산을 사용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키운 셈이기에 김 지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의 예산을 아끼려는 명목으로 진행한 일이 금융 시장에 대한 신용도 하락과 경색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지난 10일 추경호 부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김 지사가 시장의 민감성에 대해 더 진중하게 판단했어야 한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정치계에서는 김 지사의 채무 불이행 선언을 전임자인 최문순 전 지사의 치적 사업인 레고랜드 유치를 지우기 위한 정치적 행보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큰데, 이에 정치적인 사유로 경제 위기를 불러온 김 지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강원도가 채무 이행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이행 발표로 불신을 키웠다.”고 김 지사를 비판하였으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제에 올인해도 모자란 위기 상황에 야당 탄압과 정치 보복에만 주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의견을 밝혔다.

 비판의 의견에 대해 김 지사는 지난달 24일 페이스북에 “이번 일로 본의 아니게,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자금시장에 불필요한 혼란과 오해가 초래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고 사과의 뜻을 전하며 “강원도는 처음부터 보증채무를 확실하게 이행하겠다고 했었습니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적이 없습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현 사태가 최문순 전 지사의 업적을 지우려는 정치적 행보와 경제적 무지로 발생한 일이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많은 빚을 남겨놨는데 가만 있기만 하면 전임 도정이 빚을 갚아줍니까? 강원도는 조속한 시일내에 중도개발공사를 회생시키고 보유자산을 매각해 소중한 도민혈세를 지키겠습니다.”고 반박하였다. 하지만 보증을 선 회사에 대해 기업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금융 시장에서 채무불이행으로 해석되어왔다는 의견과 함께 2,050억 원의 채무에 대한 압박이 심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책임론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 신용평가사는 “김 지사도 일이 이렇게 커질지는 몰랐겠지만, 정치인의 무책임한 판단으로 경제적 피해자만 양산하게 되었다.”고 꼬집었다.

 

과연 개인의 부주의가 불러온 위기인가

 이렇듯 김 지사에 대한 비판이 거센 가운데, 일각에서는 레고랜드 문제가 단순히 책임자 개인의 부주의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기타 정부 기관 역시도 충분히 대응할 시간이 있었지만 신용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가 늦어서 문제가 커졌다는 것이다. 김 지사의 채무 불이행 발표로 인해 시장에 불안이 확산되는 중 지난 10월 14일 추 부총리는 기자 간담회에서 레고랜드 사태에 대해 “이 문제는 강원도에서 대응을 해야 할 것 같다. (시장 전반으로 불안 심리가) 확산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 “정부가 섣불리 대처하면 오히려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할 수 있어 상황을 보다가 지난 23일 대책을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금융 위기가 장기적으로 전체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부의 대처와 후속 여파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이 적절한 책임을 지는지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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