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심지어는 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에도 하루 중 잠깐이라도 남는 시간이 생기면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모두 같은 행동을 한다. 손에 든 핸드폰에서 자주 사용하는 SNS 앱을 켜고, 특별히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님에도 한동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생산적이고 급히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유튜브나 뉴스를 보거나, 인스타그램 또는 페이스북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쇼핑몰에서 구매 계획이 없던 제품을 구경하곤 한다. 

 이렇게 소비하는 시간이 아까워 핸드폰 사용 시간을 줄이려 굳게 다짐해도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새 게시물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우리를 재촉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의 높은 조회수와 좋아요가 우리를 매혹하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알고리즘이 ‘이것도 좋아할 것 같다’며 사실은 별 의미가 없는 새로운 콘텐츠를 미끼로 던진다. 본 기사는 소셜미디어와 플랫폼의 발달로 인해 형성된 관심경제와 그 것이 사람들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들여다본다.

 

관심이 돈이 되는 세상, 관심경제

 우리는 비로소 ‘관심’이 돈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는 비유적 표현이나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발달한 SNS로 인해 우리는 기존에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과 온라인상에서 마주하며 살고 있다. SNS로 인한 ‘연결’만큼이나 큰 변화가 바로 ‘관심경제’이다. 

 관심경제는 소비자의 관심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관심 서비스 등을 제공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방법과 그러한 방법이 일반화된 사회적 형태, 또는 그러한 개념을 적용한 광고시장을 뜻한다. 즉, 소비자에게 맞는 서비스를 개인화해서 제공함으로써 소비자가 해당 서비스를 선택하거나 구매하게 하는 것으로, 맞춤형 뉴스, 맞춤형 검색, 구매, 추천 상품, 알림 등을 들 수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을 열면 내가 한두 번 관심을 표했던 주제어에 맞는 물건과 관련한 광고들이 끊임없이 노출된다. 관심경제는 이렇듯 ‘관심을 도구화해 이윤을 취하는 것’이다. 관심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선택을 기록하고 분석하여 개인에게 최적화된 요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관심경제의 어깨 위에 올라탄 거대 기업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거대기업을 필두로 신생 스타트업들도 이미 이러한 개념을 도입하여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유튜브(YouTube)는 이용자가 시청한 영상을 토대로 유사하거나 흥미를 느낄만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이 추천 기능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술을 활용해 개별 사용자의 취향에 대해 정교하게 분석해낸다. 이용자들은 이런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잘 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은 최대 1분을 넘기지 않고 평균적으로 15~25초 정도의 짧은 영상 ‘숏폼’을 선보이며 유저 1인당 이용 시간을 기준으로 유튜브를 뛰어넘으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틱톡 또한 관심경제 흐름에 힘을 실어주는 플랫폼 중 하나이다. 틱톡은 사용자로 하여금 직접 콘텐츠를 고를 필요 없이 짧은 길이의 영상을 빠른 속도로 전환시키며 사용자들의 반응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더욱 최적화된 영상을 화면에 띄운다.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Netflix)의 관심경제 활용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넷플릭스는 소비자가 감상한 영상 콘텐츠를 검토하여 감독, 배우, 장르에 대한 선호도를 산출하고, 시청 시간, 감상 패턴 등을 분석해 이용자에게 최적화된 영상을 추천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최근 ‘광고형 저가 요금제’를 출시하여 화제가 됐었다. 콘텐츠에 광고를 포함하는 대신 기존 요금제보다 4,000원가량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이 또한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소비자들의 선호도에 맞춤형으로 선별된 광고를 제공하는 관심경제의 대표적 예시이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은 본래 즉석 사진기(Instant Camera)와 전보(Telegram)의 합성어로, 찍은 사진을 공유하여 소통하는 SNS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인스타그램은 동영상과 릴스(인스타그램에서 숏폼을 뜻하는 은어)를 선보이며 종합 미디어 플랫폼으로 변모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이용자들은 인스타그램을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관’하는 용도가 아닌, 탐색을 통해 유명하고 많은 반응을 이끈 ‘콘텐츠를 소비’하는 플랫폼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관심경제 개념이 향후 10년간 웹 경제에 큰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한다. 

 

알고리즘이 병들게 하는 세상

 안타까운 사실은 관심경제 속 거대 SNS 기업과 플랫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콘텐츠와 그 콘텐츠가 전하는 메시지의 ‘깊이’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라는 것이다.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수록 사용자는 오랫동안,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해당 플랫폼에서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단지 메시지의 강렬함만이 알고리즘의 핵심이 되는 생태계에서 우리는 ‘강한’ 분노, ‘강한’ 슬픔, ‘강한’ 즐거움 사이를 오가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극단적 감정은 우리가 관심경제에 더욱 매몰되도록 부추긴다. 

 지난해 통계청은 10대 청소년들의 36%가 스마트폰에 과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며 미디어 콘텐츠를 과소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거대 플랫폼들은 청소년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이 사용하여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는 혐오감을 포함한 극단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산되고 공유되고 있다. 기업들은 이용자가 플랫폼상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려 높은 광고 수익을 거두는 것에만 집중해, 혐오와 극단주의 등 편향성을 가중시키는 알고리즘을 자정하지 않고 묵인한다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다.

 

관심경제에 맞서는 움직임

 글로벌 화장품 기업 ‘러쉬(Lu-sh)’는 지난해 11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전면적으로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되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객과 소통할 기회를 늘리고 마케팅 수단으로 SNS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반대되는 행보를 택한 셈이다. 러쉬는 SNS 중단 선언을 하며  디지털 폭력, 외모 지상주의, 불안과 우울 같은 정신 건강 문제 가중 등의 SNS의 유해성을 지적하여 관심경제의 폐해에 경종을 울렸다. 누리꾼들은 브랜드의 가치를 건강하게 향상한다고 평가하며 러쉬의 이런 행보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있다. 

 최근 미국의 대학가를 중심으로 ‘Be Real(비리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SNS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과시와 자랑이 주된 목적이 된 기존 SNS에 피로감을 느낀 프랑스의 한 개발자가 출시한 비리얼은 임의의 시간대에 알림이 울리면 2분 이내에 사진을 찍는 이용자 본인과 이용자에게 보이는 시선을 동시에 영상으로 담아 게재하는 기능을 선보였다. 언제 알림이 울릴지 모르고 반드시 2분 안에 게시물을 올려야 하므로 연출이 불가능하고 그대로의 일상을 게재하게 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포파라치(Poparazzi)’라는 어플은 남이 찍은 사진만 게재할 수 있는 SNS이다. 직접 스스로를 찍는 ‘셀피(Selfie)’는 게시할 수 없다. 의도적으로 있어 보이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포파라치는 미국, 호주, 벨기에 등지에서 다운로드 수 1위를 기록하며 ‘이유 있는 불편함’으로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이렇듯 일부 기업들과 일반 대중들은 관심경제의 어두운 면을 인지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모바일 환경과 SNS, 인공지능 등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누릴 수 있는 만큼 그에 반대되는 위험성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관심경제 속 사람들은 분노, 슬픔, 혹은 초조함에 빠지기 쉽다. 국제 분쟁부터 정치 기사, 혐오 사건 영상부터 연예인의 열애설, 혹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강아지 방귀 사건’까지 내 눈앞에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관심경제가 불러일으키는 과잉된 감정은 우리가 정말로 관심 가져야 할 세상의 현실을 희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과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 휴대폰 화면 속에 있는지 고민해보고 관심경제의 파도에서 벗어나 ‘관심에 대한 주권’을 되찾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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