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앞의 골목길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 당일 이태원은 핼러윈데이를 맞아 약 10만 명 정도의 거대한 인파가 몰렸으며, 밤 10시 20분경에 경사진 좁은 내리막길에 운집한 시민들이 넘어지며 참사가 일어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1일 오후 6시를 기준으로 157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다쳐 총 35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최악의 압사 참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전국이 비탄에 잠겼다. 이튿날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달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였으며, 이에 수많은 문화 행사들이 잇달아 취소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가장 큰 인명 피해로 기록된 이 참사는 2022년 한국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나도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라는 불안감과 함께 SNS를 매개로 현장의 비극적인 영상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세월호 세대’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청년층의 허무와 트라우마는 이번 참사의 희생자 중 104명이 20대였다는 점과 맞물려 사회 현상으로 번졌다. 또 사고 당일 11건의 관련 신고가 112신고센터에 접수되었음에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한 경찰과 사후 책임을 미루는 데 급급했던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행정 당국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논의는 정치권으로 이어져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닌 추모의 시간(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졸속적으로 결정해서 강행한 청와대 이전이 야기한 대참사다(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 와 같은 말들이 공론장을 오갔다. 우리 학교에서도 익명의 대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하 에타) 등을 통해 애도의 목소리와 비난의 목소리가 함께 표출되었다.

 

추모의 물결, 멈춰버린 시계

 우리 학교도 10ㆍ29 참사의 영향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우선 캠퍼스 내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이어 참사 관련 교내 피해를 조사하는 이수진 학생정책처장, 신병하 학생생활처장 명의의 메일과 강용섭 학생생활팀장 명의의 메일이 송부되었다. 학생지원팀에 따르면, 10ㆍ29 참사로 인해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학생은 없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기존에 계획되었던 행사들도 취소 또는 연기되었다. 새내기 대상으로 예정되었던 핼러윈 행사는 취소되었으며, 이달 15~17일 열릴 예정이었던 학생문화제도 23~25일로 연기되었다. 규모도 축소되어 기존의 야외 잔디광장이 아닌 류근철 스포츠컴플렉스(N3) 내에서 진행된다. 

 

희생자를 향한 애도와 비난의 목소리

 이런 상황에서 에타에 애도와 비난의 글이 산발적으로 올라왔다. 에타 내 10ㆍ29 참사를 다룬 글이 12일 기준 약 200개에 달하는 만큼 여론을 전부 싣는 건 불가능했다. 그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종류의 반응으로 나누어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사진 보니까 진짜 재난이다. 제발 큰일 없었으면 좋겠다."와 같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내용이다. 둘째, 희생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태원 놀러 간 것이 모두가 통탄해줘야 할 만큼 자랑스러운 이유도 못 된다.", "이미 일어난 일의 원인 제공자가 정부는 아니지 않나"라는 반응이 이러한 시각이다. 셋째, 희생자를 향한 조롱ㆍ성적 모욕ㆍ인신공격을 담은 내용이다. 이 중 일부는 <인사이트>에 기사화된 바 있다. (관련 기사 인사이트 2022년 10월 31일 <금붕어 죽었다며 이태원 참사 조롱한 카이스트 학생들 잡아서 처벌해 주세요>) 넷째, 희생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글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10만 명의 평범한 2~30대가 모인 건데 전체를 불량 집단마냥 취급하는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는 반응, “희생자들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걸 보고 숨이 턱 막힌다.”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요약하자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입장에 이입하는 흐름과 희생자들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비난하는 상반된 흐름이 뚜렷이 나타났다. 

 

진정한 추모와 회복을 향한 발걸음

 이렇게 서로 다른 목소리가 양립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애도하고 사회적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사회적 지지는 재난으로 인한 고통의 완충재로 작용하고 재난으로부터 공동체가 회복하는 데 기여한다. 함승경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ㆍ미디어학부 강사는 2019년에 작성한 논문 <재난 위험의 불확실성과 재난 유형이 공중 반응에 미치는 영향: 피해자 비난을 중심으로>을 토대로 “사회적 지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대표적 요인에는 공감이 있으며, 이는 피해자의 고통에 반응하고 이해하며 해결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반면, 피해자 비난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피해자들의 사회적 지지 인식을 약화시킨다. 나아가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은 재난이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위협을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책임감을 덜 느끼게 하고, 재난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즉,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피해자를 비난함으로써 본능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재난이 주는 위협을 해결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함 강사와 김영욱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ㆍ미디어학부 교수가 작성한 2019년 논문 <피해자 비난과 공동체 탄력성에 관한 연구: 재난 유형과 죽음의 현저성을 중심으로>에 제시된 바와 같이, “죽음의 공포와 인간의 취약성에 대한 자각이 피해자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민적 자각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번 참사로 인해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을 돕고, 참사를 딛고 일어서기 위한 국가와 학교 차원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고로 어려움을 겪는 교내 구성원 누구나 교내 상담센터(042-350-7952),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 보건복지상담센터(129), 대전광역 정신건강복지센터(042-486-0005)를 통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전광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대전시 거주자를 대상으로 10ㆍ29 참사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 최대 50만 원 가량의 심리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 학교 상담센터에서는 10ㆍ29 참사와 관련해 상담을 신청할 경우, 전문적인 개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해 교내 구성원들을 돕고 있다. 상담센터 전병규 직원은 “상담센터 홈페이지(kcc.kaist.ac.kr)에 들어와서 개인 상담을 신청하면, 담당 상담사 및 상담 일정을 잡고 있다.”라고 심리상담 진행 과정을 설명하였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한 헌법 제34조 6항에서 알 수 있듯, 모든 국민은 안전할 공간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10ㆍ29 참사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못한 이 시점에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재해로부터 안전한 터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 

 

카이스트신문은 10ㆍ29 참사의 희생자를 깊이 애도하며, 유가족, 생존자, 그리고 이에 따라 직간접적 피해를 보신 모든 분의 조속한 안정을 기원합니다.

 

이태원 참사 대전시 합동 분향소 (©이준하 기자)
이태원 참사 대전시 합동 분향소 (©이준하 기자)
10ㆍ29 참사 다음 날 현장에 놓여진 추모 꽃다발 (원유건 학우 제공)
10ㆍ29 참사 다음 날 현장에 놓여진 추모 꽃다발 (원유건 학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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