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에서 어떤 사람들이 당신의 하루 속에 있었나요?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쳤을 인연, 하지만 학교라는 장소로 이어져 있는 ‘우리’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배가현 기자
©배가현 기자

 지난해 12월 스위스 르 마탱(Le Matin)지에서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를 선정했다. 전 시대의 대가인 샤갈과 마티스를 제치고, 표지에 소개된 것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세계적인 거장으로 불리는 김인중 신부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납선으로 그림의 테두리를 그린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유리 판 위에 바로 붓으로 색을 칠해 만들어진다. 서예에 뿌리를 둔 붓의 농담과 속도감은, 동양화의 깊이감과 생동감을 유화에 녹여낸다. 김인중 신부는 지난 8월 우리 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초빙석학교수로 임명되었다. 가을학기 세미나 수업을 통해, 심미적 가치를 추구해 온 오랜 경험과 철학을 학생들과 공유했으며, 학술문화관(E9)의 천창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194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69년에 유럽으로 가서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머물렀어요. 그곳에서 사제 서품도 받은 저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사 신부이자 화가이고 특히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많이 해요.

 

학술문화관 천창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시라고 들었어요

 학술문화관 3층에 전체 크기가 대략 10m*8m인 53개의 천창이 있어요. 천창 하나당 한 작품씩 53점의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유화가 완성되면, 독일의 빌헬름 페터스라는 유리 장인이 이걸 보시고 원화를 그대로 유리에 재현하는 작업을 완성하세요. 수작업으로 유화의 농담과 입체감, 두께감을 유리에 그대로 표현합니다. 지난 6년간 저와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분이에요.

 이 기회도 저에게는 참 감동적인 거죠. 이렇게 큰 규모의 천창 작업은 처음이에요. 빛이 천창에서 바로 떨어져서 안을 비추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멋있을 거예요. 53점의 스테인드글라스를 KAIST 학생들의 서로 다른 재능과 서로 다른 얼굴로 생각해요. 각각 온전한 자기 존재들이 조화로운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어요. 모두 다 각자의 얼굴이 있으면서 남을 해치지 않고 같이 공존하는 게 얼마나 아름다워요. 아름다움의 정의는 통일과 조화거든요. 

 

학술문화관 천창 작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요?

 학생들도 너무 공부에만 매이지 말고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것에 뜻을 두고 있어요. 이 젊은 학생들이 다 수재들이니까 원하는 대로 학위도 취득하고, 취직도 하겠지만, 그런 것들에서 절대로 완전한 만족을 찾을 수는 없어요. 사람에게는 원초적인 만족이 필요해요. 그 만족에 대답을 할 수 있는 게 예술이에요. 저는 그냥 예쁜 천창을 꾸미는 것이 아니에요. 학생들이 영원에 다가가는 어떤 아름다움, 그 속에서 치유와 평화, 안식과 같은 것들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학생들에게서 건조함을 걷어내고, 위안을 건네주고 싶어요. 그래서 제 그림이 여기 걸리는 것에 대해 행복감을 느껴요. 이곳을 드나드는 학생들에게, 잠깐 멈추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잖아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어떤 특징을 가지나요?

 그림은 한번 형상과 색이 고정되면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햇빛은 시시각각 변하잖아요. 그에 따라 스테인드글라스도 매번 달라지는 거죠. 그게 엄청난 매력이에요. 빛은 생명력을 가진 존재예요. 빛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데도, 유리를 깨지 않아요. 또 빛은 색과 달리 섞을수록 밝아져요. 신비롭고 특별해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빛은 오래된 성당 벽의 무겁고 차가운 돌의 물성도 한순간 바꿀 수 있어요.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시나요?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 자식 길러서 시집 장가 보내는 그런 느낌으로 그려요. 내가 나를 위해서 이 그림들을 가지고 있을 게 아니잖아요. 이것들이 진짜 새처럼 날아가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기쁨을 주기를 원해요. 아름다움과 진선미는 분리될 수 없어요. 내 그림이 진선미를 나타내기를 바라요. 나는 모든 것이 감사 하나로 통해요. 작품이 잘 안되어도 감사해요. 매번 모든 일이 잘되면 내가 교만에 빠질 수 있잖아요. 잠시 어떤 터널을 지나가는 거예요. 

 

신부님 작품은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닌 ‘세계화’라는 말을 들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보통의 다른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성경의 장면을 묘사해요. 하지만 제 그림은 무엇인가를 재현하지 않아요. 국경과 인종과 언어를 초월하는 것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당에만 국한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제 스테인드글라스는 무슬림 사람들도 많이 봐요. 빛을 함께 나누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제 작품은 의미를 가져요. 저는 그런 점이 행복해요.

 

화가로서 60년 동안 그림을 그리시고, 신부로서 45년 동안 재직하셨어요. 한 가지 일을 오랜 시간 지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계속한다는 것은 항상 소중한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고나 사건으로 그런 연속이 끊어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사건들, 죽음조차도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해요. 결국 끝과 시작은 계속되기에, 매 순간은 결국 새로운 시작이에요. 이 일을 오랜 시간 동안 하면서도, 그 순간순간이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했어요. 

 

KAIST 학생들에게 ‘젊은 시절을 보내는 것’에 대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학생들이 자기 연구 분야를 열심히 하는 만큼 자기 자신도 잘 돌보았으면 좋겠어요. 여유를 가지세요. 다른 학생들보다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획득하더라도, 허무함에 휩싸일 수도 있어요. 내가 사는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세요. 성공보다는 행복을 추구하세요. 종교와 상관없이, 창조주의 안경을 쓰고 지금의 인생을 살아가세요. 창조주의 안경을 쓰면 사소한 문제들은 다 사라지죠.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따뜻한 마음을 가지세요. 그러면 세상도 달라지고 자신도 행복해질 거예요. 학생들에게서 미소를 보고 싶어요. 다들 여유가 없어 보여요. 다들 무관심하고 무표정하게 지나가요. 일단 KAIST에 모였으면 아무리 학생이 많아도 다 한 식구잖아요. 우리 다 한 식구니까 지나가면서 서로에게 미소 정도는 지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충청남도 청양군에 제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빛섬아트갤러리를 만들어 지역발전 상생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빛섬은 빛을 섬긴다는 뜻도 있고, 빛을 나누는 섬이라는 뜻도 있어요. 지역 발전에 문화예술 콘텐츠가 절실하게 필요한 곳에서, 이런 빛섬상생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국내외 예술가들이 기쁨과 평화의 빛을 나누어드릴 예정이에요. 학생들이 이런 프로젝트에도 관심을 가지고, 한 번쯤 들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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