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버거 - 「리미트리스」

 작가를 지망하지만 책 한 권 제대로 써본 적 없는, 그런 흐지부지한 인생을 살고 있는 주인공 모라. 그렇게 연인과 이별할 상황까지 간 찰나에, 그는 전처 멜리나의 오빠 버넌을 만난다. 버넌은 NZT라고 불리는 의문의 약을 그에게 건네며, ‘이 약을 먹으면 뇌를 100%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잠시 주저하다가 끝내 유혹과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약을 삼키는 모라. 그렇게 30초 후, 그는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 ‘천재’로 재탄생한다. 그는 여러 언어를 단번에 익히고, 책도 순식간에 완성하며. 주식투자로 큰돈을 버는 데도 성공한다. 

 물론 우리 뇌는 항상 여러 영역을 동시다발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20%만 사용하던 뇌를 100% 활용한다’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고 영화를 봤음에도, 약물 덕분에 자신감 넘치고 성공한 삶을 영위하는 모라의 모습이 나에게 왠지 모를 설렘의 감정을 선사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주인공 같은 능력이 생기면?’과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즐겁게 영화 초반부를 감상했다.

 그러나, 모라가 주식 시장의 거물 칼 밸룬과 대면하는 중반부터 결말 전까지, 영화는 약물 중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쪽으로 초점을 돌려 다소 뻔하고 클리셰적인 전개를 펼친다. 모라는 약물 부작용으로 끊임없이 두통이나 구토 등의 증세를 보이며, 불안과 편집증에 시달린다. 초췌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멜리나도 ‘약을 끊어야 한다’고 그에게 강력히 경고하지만, 그는 끝내 약을 끊지 못한다. 결국 그는 약 성분이 녹아있는 시체의 피를 핥아 먹을 정도로 약에 의존하게 되고, 그렇게 약쟁이들의 전형적인 말로, 곧 파멸의 길을 걸을 것처럼 보였다. 스토리 전개상으로 볼 때, 그래야만 했다. 물론 이 좋은 소재로 이토록 뻔한 결말밖에 보여줄 수 없나 하는 실망감은 감출 수 없었지만. 그러나, 모라는 보란 듯이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파멸’로 이어질 듯 보였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거스른다. 

 나는 이 짧고 뜬금없는 칼 벨룬과 그의 대화가 처음에는 굉장히 당혹스럽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도리어 감독의 치밀한 설계에 감탄했다. 내가 느낀 이 당혹스러움과 허무한 감정까지 모두 감독의 의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먼저,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데 손 놓고 당할까 봐서요?’라는 모라의 대사는, 결말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관객에게 감독이 놓는 따가운 일침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모라가 칼 밸 룬의 심장에 손을 댄 채 그의 ‘운명’을 읊어 내리는 장면. 이 장면에서는 감독의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의 반응을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의도적인 개연성 파괴 전략’을 밀고 나갈 것이라는 감독의 결의가.

 그리고 나는 이러한 그의 전략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닐 버거 감독은 이 전략을 통해, 다소 밋밋하게 흘러갈 뻔한 영화에 강한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충격 요법을 통해 관객의 기억 속에 ‘리미트리스’라는 영화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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