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진로 고민이 술자리 위로 많이 오릅니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요, 안줏거리 얘기가 변했음을 체감합니다. 이렇듯 진로 고민을 서로 터놓고 하다 보면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아직 전공을 정하지 못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물리를 좋아했습니다. 참 좋아했습니다. 카이스트에 와서는 어떤 공대 학과를 선택해야 할지 몰랐기에 기경과를 선택했어요. 복수전공으로 전자과를 선택했지만 군대를 가서는 백 엔드 개발을 맡았고, 현재는 휴학 후 스타트업에서 백 엔드 개발자로 인턴 중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제가 항상 고민하고 확인하고 싶은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고 나의 욕구는 무엇인가’

 돌이켜보면, 또는 학교를 다니다 보면 내가 정말 원해서 카이스트에 왔는가에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함께 한 번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정말 자의로, 스스로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카이스트를 선택하셨나요? 여러분과 저의 노력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저는 카이스트를 오겠다는 선택의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정말 운 좋게 성적이 잘 나와서 부모님이 칭찬해 주셨고 그게 좋아서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과학고에 가면 수능을 안 친다는 말과 과학고를 가면 카이스트를 갈 수 있다는 말, 카이스트가 우리나라 최고의 공대라는 말, 군대를 안 가도 된다는 등의 외부적인 요인과 저의 꾸준했던 노력이 합쳐져 카이스트를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외부의 환경에 의해 주입 받은 욕망을 추구한 게 아닐까요?

 인생의 끝, 내 모든 것의 끝인 순간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저는 가끔 지금 모습 그대로 죽는 상상을 합니다. 그랬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꽤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든 후, 인생의 마지막에서 느낄 감정은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의 젊음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꿈 같은 20대가 지나고 30살이 시작되며 가정이 생기고 불혹의 나이가 되어 늙어버린 신체를 상상해봅시다. 이후 50대부터 죽을 때까지는 대게 인생에서 보상을 받는 시기입니다. 생각보다 젊음은 그리 길지 않고, 젊음으로 보상받는 시기가 더 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젊음을 과연 어디에 쏟아야 할까요? 바로 ‘본인’에게 쏟아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우리의 욕구는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합니다. 이 고민의 해답을 찾고 충분히 노력한 후의 죽음 앞에서는 편안할 거 같아요. 결국 이 고민들은 우리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그 첫 단추가 바로 전공을 정하는 것이고요. 특히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는 전공에 대한 관성이 더 크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공대에서 정말 열심히 했으니 한 게 아까워서라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할거 같아요. 전공을 정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정말 크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인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고, 조급해하지 맙시다.

 특히 우리의 모든 신경과 관심, 에너지를 외부에 쏟지 말고 오롯이 내부를 향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은 충분히 힘들 수 있습니다. 아니 힘든 것이 당연합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니까요.

 여담이지만 우리의 뇌에는 심리에너지가 한정 되어있습니다. 이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아주는 것이 바로 ‘주의’이고 얼마나 한 곳에 ‘주의’를 잘 기울이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달라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주의’를 한 곳에 집중하고 있을 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집중할 무언가를 찾아요. 그래서 우리의 ‘주의’를 위협하는 고민이 들어왔을 때, 우리의 뇌는 이 위협을 빠르게 제거하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고민들이 불안하고 조급하고 이상하다는 판단이 들면 머릿속에서 빠르게 제거되고 미뤄집니다. 그러니 우리 조급해하지 말아요. 조급해하면 힘든 고민은 안 하게 됩니다. 당장 해야할 것만 쫓게 되고, 복잡한 고민은 뒤로 미루게 돼요. 그러니 이런 고민에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봅시다. 몇 번 고민했다고 풀리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고민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요? 바로 본인의 욕망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시대적 흐름과 돈은 조금 배제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둘은 외부에 의해서 주입 받은 욕망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최근 시대적으로 전문직 열풍이 부는 것에 휩쓸려서 다 전문직 도전하니까 나도 한 번 해보자라는 심리는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들 따라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맞는지 한 번쯤 의심해보고 고민해볼 여지는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본인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니까요. 반대로 이상보다는 현실적으로 접근해서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공 가능성보다 ‘이상에 가까워지기’를 얘기하는 것이니 잠시 접어 두겠습니다.

 일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잘 모르기에, 저는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을 먼저 찾아봤던 거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나 레퍼런스를 찾아보면서 본능적으로 멋져 보이는 사람들을 고르고 그들의 공통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에요. ICISTS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 - 공무원, 연구원, 대학원생, 교수, 협회 단장, 창업가, 스타트업 종사자 등- 를 만나서 얘기를 나눠봤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결국 그들의 자아와 가치관을 제가 그대로 따를 순 없더라고요. 대안으로는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은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전달력 있게 여러 번 정제한 것입니다. 남과 공유하고 싶은 얘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으니, 적어도 ‘좋은 책’이라면 많은 간접 정보나 관념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본인의 경험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두 개를 같이 하면 더욱 좋구요.

 저의 경우에는 두 가지를 같이 했습니다. 군대에서 약 50권 정도의 책을 읽었고 책에서 중요하게 얘기하는 가치들을 저의 경험과 결부시켜서 저의 욕구를 파악하게 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본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저를 예를 들어 간략하게 얘기해볼까 해요.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단지 해보고 싶은 게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공대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기경과를 선택했지만 복수 전공으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전자과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어요. 이런 결정의 이면에는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 라는 욕구를 무시하고 현실과 타협한 과정이 숨어있습니다. 하지만 ‘몰입, flow’라는 책을 읽고 ‘다양한 걸 하고 싶다’는 저의 욕구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보다는 엄청 열심히 꾸준히 살면서 다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경험을 돌이켜 봤을 때, 완전히 새로운 분야나 일을 배울 때는 어느 것보다 재미있어 하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물론 그만큼 어려워서 중간에 그만둔 것도 많아요. 하지만 이는 제가 충분한 시간 투자를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고 이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강력한 동기부여로 이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미술 작품이나 콘서트를 보면서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한 적이 많습니다. 그 때의 감정을 시간이 지난 잘 돌이켜보면 그들만의 이야기, 서사가 있다는 점이 바로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임을 깨닫게 되었어요. 창업가의 스토리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해서라기보다 그들의 비전과 이를 실현에 옮기는 행동이 개인의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티스트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레이달리오의 ‘원칙’과 니체의 ‘초인’ 개념에서 제 욕구를 찾을 수 있었는데, 간략히 얘기하면 ‘영웅의 여정’과 같이 서사적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더라도 창조적인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서사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술 쪽에는 영 소질이 없는지라 본능적으로 답을 찾는 공대보다는 답이 없는 ‘경영학’에 끌린 게 아닌가 싶어요. 또 다른 방향으로는 ‘코딩’이 있는데 이 또한 잘하는 친구들에게 압도당하는 느낌이라 시도조차 안해봤습니다. 실제로 제가 들은 전산과 과목은 ‘데이터 구조’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찾은 저의 두 번째 욕구는 제가 군대에서 코딩 공부를 꾸준하고 열심히 하게 해준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후배들 과외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왜인지 모르게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저도 모르게 문제도 출제하고 자료도 몇 십페이지를 자체 제작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정말 학원 강사를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반대하실 게 뻔하기에 그 감정을 한 동안 무시한 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3년 전쯤 컨설팅이라는 진로를 알고 정보를 접하면서 과외를 할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너무나도 다른 두 분류라서 왜 그런가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근데 이번에도 외부적인 요인을 많이 신경 썼습니다. 둘다 돈을 많이 벌어서일까라고도 생각해봤지만, 내린 결론은 엉뚱하게도 ‘남보다 우월함을 느끼는 감정이 좋은 것’이라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과외를 할 때 느꼈던 감정을 내부적인 요인에서 찾기보다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시선이라는 관점에서 고민하다 보니 이런 엉뚱한 결론이 나온 것이었죠. 하지만 저는 이런 결론에도 다시 한번 의심을 가졌어요. 그리고 ‘다시 배우는 공부법’이라는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도 컨설팅업에 종사하지만, 저와 소름 돋을 정도로 똑같은 고민의 플로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타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싶은 욕구’였습니다. 이를 통해 저 또한 ‘타인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싶은 욕구’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현재 클라썸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클라썸의 비전과 이런 욕구가 잘 정렬되어 있는 거 같아 굉장히 만족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전공을 정했냐고 물어보면 아직 모른다고 답합니다. 실제로 못 정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제 저의 욕구를 분명히 압니다. 그렇기에 비록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직업이 나한테 맞을지 판단할 수 있는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의 욕구를 분명히 알고 나니 이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일을 굉장히 꾸준히 열심히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위의 욕구를 가장 강력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코딩’이나 ‘컨설팅’이라 판단을 내렸고 군대에서 정말 열심히 하다 보니 데이터 구조만 들었음에도 인턴 경험과 군대 경력까지 있는 주니어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욕구를 스스로 깨닫기에 무려 4년이나 걸렸습니다. 20살부터 23살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에서나 정리했으니까 말이에요. 남들은 어떤지 모르기에, 이 시간이 긴 시간인지 짧은 시간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본인에 대해 정말 치열하게 고민해보자’ 하지만 ‘한 치의 조급함도 가지지 말자’ 입니다. 저도 조급합을 느끼고 성급하게 생각했으면 결론을 내리지 못하거나 고민을 포기했을 거예요. 저는 이 고민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발견하지 못한 욕구가 더 많이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본인’에 대해 우리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 보자구요. 그 고민의 결과가 우리의 인생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될테니까요. 그리고 조급해 하지 맙시다. 이렇게 중요한 고민을 스킵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는 사람들도 많기에, 본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위로해주세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시간의 술자리 얘기를 몇 천자 이내로 잘 풀어내지는 못한 거 같지만,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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