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동아리방을 나오다 울긋불긋한 가을을 한꺼풀 벗은 나무들을 발견하였다. 분명 저번에 봤을 때는 초록 잎이 달려있었는데… 이건 단순히 ‘세월이 참 빠르다’,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이번 가을학기, 숨 가쁘게 달려온 생활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에게는 단풍 든 나무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렇게 이른 아침의 맑고 청아한 하늘을 바라보며, 가을학기 수강계획을 세우던 여름학기가 떠올랐다.

 여름에는 버클리 대학에서 여름학기를 다니고 있었다. 전공 선택을 채우기 위해 전공할 학과의 과목들로 시간표를 채웠는데, 두 달 남짓한 시간동안 미국 서부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여유롭게 수업들을 들었다. 그러던 중 학과 시간표가 나와 열심히 수강계획을 짜게 되었고, 친구들끼리 서로 듣고 싶은 과목을 공유하다가 결국 다 비슷한 과목을 수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새내기였던 우리는 ‘카이스트’에서 전공을 여러 개 듣는다는 것이 어떤 고통을 수반하는지 몰랐었다.

 여름학기에 짠 수강계획대로 몇 주 수업을 들어보니, 새내기용 필수 과목들을 포함하여 5전공 이상씩을 듣는 것은, 분명 버클리에서는 2전공을 매일같이 놀면서 들었음에도, 엄청 힘들었다. 예습보다는 뒤늦은 복습이 주를 이뤘고, 매주 나오는 과제를 처리하다가 결국 중간고사 전까지 시험 범위를 다 못 봐서 밤을 새는 일도 허다했다. 내 손을 거쳐서 W로 찍힌 과목도 2개나 있었다.

 그렇게 그날도 밤새 과제를 끝내서 동아리방을 나왔을 때였고, 나를 반기는 헐벗은 나무들은 나로 하여금 주변을 둘러보며 살지 않았던 2학기의 삶에 회한을 가지게 하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새벽녘 상쾌한 바람이 스치며, 이러한 안타까움만이 아니라 5전공을 듣는 삶의 뿌듯함도 느끼게 해주었다. 다양한 전공 과목들을 듣고, 과제를 해결하며 지식을 얻는 일은 많은 고통을 줬지만, 그를 뛰어넘는 만족감도 줬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무모하다고도 볼 수 있는 도전 속에서 비록 체력적으로는 힘들더라도 나름대로의 지식을 얻으며 충족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번학기와 같이 수강신청을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 할 것 같지만, 그 험난한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낙엽 길을 따라 소망관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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