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이태원에 핼러윈을 즐기러 모인 수많은 인파가 갑자기 좁은 골목에서 밀리면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시내 한복판 번화가에서 사망 156명, 부상 196명이라는 초유의 사상자가 나왔지만, 아무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는 집행부 없이 진행된 자발적인 행사였기 때문에 대비가 불가능했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책임 전가에만 급급하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마스크 없는 핼로윈 행사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고 현장에는 인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경찰 병력만이 배치되었고, 사건 당일 압사 위험을 경고하는 수차례의 112 신고에도 적절한 대처가 없었다. K팝, K드라마, K방역의 성공에 열광하던 외신들은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학적으로 효율적인 군중 관리가 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IT 강국 한국에서 어떻게 일 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밤, 그렇게 비참하게 실패할 수 있었는가를 말이다.

 미디어의 관심이 온통 이태원 참사에 집중되어 있던 시기, 경북 봉화에서는 탄광 붕괴로 지하 190미터 갱도에 두 명의 광부가 매몰되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11월 4일, 고립된 지 무려 221시간 만에 이들이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며 이태원 참사로 침울한 우리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었다. 그러나 그 실상을 살펴보면 참사를 운 좋게 면했을 뿐, 우리 사회가 여전히 구조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또 다른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태원 참사와 마찬가지로 봉화 탄광 붕괴 사고도 이미 예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전국 대부분의 탄광 시설이 노후해 지난 3년간 35곳의 광산에서 중대 재해가 발발했고, 특히 이번 사건이 발생한 봉화 광산에서는 불과 두 달 전에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이후의 대응도 참사 수준이다. 광산업체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사고 발생 14시간이 지나서야 119에 신고했고, 구조 시에도 20년 전 작성된 도면으로 엉뚱한 곳에 구멍을 뚫다가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기본권이 지켜지는 사회를 소리 높여 열망해 왔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의 노동자 안전사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 등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수많은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뤄낸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시민의 안전과 자유 등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아프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태원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모든 이들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 그러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애도에만 그치지 않고 이번 사건의 원인 파악과 책임 규명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태원 참사를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쇄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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