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하민 라바투트 -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주)예스이십사 제공
(주)예스이십사 제공

 과학은 인류에게 희망을 주지만 때로는 칼을 들이밀기도 한다. 나폴레옹의 롱우드 하우스 벽을 장식하고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푸른색을 담당했던 합성 안료는, 수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빼앗고 나치당 지도부의 자살을 도운 독약이 되었다. 유대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인공비료를 개발하여 수많은 인구의 식량을 담보해주었지만, 독가스인 치클론 B를 제조하여 5천 명의 대량 살상을 일으켰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눈부신 성취와 파괴적 역사를 허구적 스토리를 더해 조명한다. 총 다섯 개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프리츠 하버,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슈바르츠실트, 그로텐디크 등 과학사적으로 영향력이 지대했던 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다룬다.

 벵하민 라바투트의 세 번째 작품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작년 부커상 최종심에 오른 논픽션 소설이다. 논픽션 소설이란, 실제 역사적 인물과 실제 사건을 허구의 스토리로 엮어낸 문학 장르이다. 알려진 과학사에서 비어 있는 간극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내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 벵하민은 “첫 번째 단편인 <프러시안 블루>에는 허구적 부분이 한 군데밖에 없지만 뒤로 갈수록 더 자유분방하게 쓰되 각 장에서 다루는 과학 개념에 충실해지려 노력했다.”며 “<심장의 심장>의 모치즈키 신이치의 경우 그의 연구에서 줄거리의 영감을 얻었지만, 이 책에서 서술하는 그의 일생과 연구는 대부분 허구다.”라고 밝혔다.

 독창적인 서사 구조로 과학사를 재구성했다는 점 외에도, 인간의 지성이 위대한 깨달음을 얻으며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김상욱 교수는 추천사에서 “나의 물리 영웅들이 바로 눈앞에서 이야기하는 착각에 빠졌다.”고 표현했다. 역사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발견을 이루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세세히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오롯이 작가의 독창성만으로 역사적 순간들을 재현해낸다. 그로텐디크가 자신이 발견한 개념에 딱 맞아떨어지는 낱말을 고르면서 느꼈던 쾌감,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이 불면증을 겪으며 양자계를 표현하기 위해 써낸 행렬을 검토하며 느꼈던 전율 등 예상하지 못한 감정의 절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 책만의 독특한 흡입력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위대한 과학자들의 집착과 치열한 논쟁에 절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