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상」(1973)(이응노미술관 제공)
「군상」(1973)(이응노미술관 제공)

 이응노미술관에서 이번에 진행하는 <이응노 마스터피스>는 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약 1,400여 점의 작품 중 대표작을 선정하여 이응노 화백의 예술 세계를 설명한다. 특히 대전에서 열리는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총회를 맞이하여 이응노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도 쉽게 그의 예술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가 기획되었다. 이응노의 예술이 변화하게 된 기점을 연대별, 장르별 대표작을 통해 보여준다. 따라서 이응노의 작품 철학을 잘 알지 못하는 관람객들에게도 이번 전시는 이응노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더불어 이응노미술관 소장품 중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들도 함께 소개하여 이응노에 이미 익숙한 관람객들도 그의 새로운 이면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거장

 이응노는 동아시아의 서화라는 양식을 바탕으로 ‘추상’이라는 당시 세계 미술사의 흐름을 수용해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창조해낸 한국 현대미술사의 거장이다. 그는 해방 이후에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동양과 서양의 회화를 탐구했고, 이에 멈추지 않고 서구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추상 미술을 흡수하되 한국 미술의 정체성도 함께 녹여냈다. 그렇게 이응노의 족적은 한국 미술을 깊게 이해한 뒤 다시 세계화한 대표적인 선례로 남았다. 

 그런 이응노 화백에게도 큰 고난이자 변혁의 기점이 있었다. 바로 동백림 사건(1967)이다. 중앙정보부는 독일과 프랑스에 있던 194명의 한국 출신 유학생 및 교민들을 간첩으로 지목했다. 중앙정보부는 해당 인물들이 동베를린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며 간첩교육을 받고 대남적화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응노는 한국 전쟁 때 헤어진 아들을 만나기 위해 동베를린에 갔다가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던 화가 이응노를 포함해 작곡가 윤이상, 시인 천상병도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고 고문을 당했다. 그렇게 이응노는 서울구치소와 대전교도소, 안양교도소를 거치며 1년 8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역경 속에서도 이응노의 예술혼은 시들지 않았다. 그에게 감옥은 오히려 다양한 도구와 표현을 시도하는 장이 되었고 이응노의 예술 세계는 점차 확립되었다. 본 전시에서는 그 변화의 과정을 더욱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깎고 찍어내고, 조각과 판화

 수감 생활 중 남긴 작품으로 유명한 입체 작품 <구성>(1967)은 이응노의 도전적인 실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재판 중에 점심 식사로 받은 나무 도시락을 해체한 뒤, 먹다 남은 고추장과 간장으로는 색을 입히고 밥풀을 이겨 입체 구조를 만들었다. 극한의 경험 속에서 이응노가 인간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호기심을 갖고 고민한 결과가 바로 <구성>(1967)이었다.

 수감 생활 이후 이응노 예술의 주요 모티브는 군상과 문자였다. 문자로 형상화한 인간의 모습들이 군상을 이루고, 춤추는 인간의 형상으로 인간사를 표현한다. 인간 형상의 머리 부분은 점으로, 팔과 다리는 획으로 표현된 나무 조각 <군상>(1973)은 여러 사람이 얽혀 만세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응노는 같은 주제를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반복해서 작업했다. 전시장에는 연도별로 그의 조각 작품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비교할 수 있도록 동명의 <군상> 조각들이 나란히 전시 되어있다. 나무, 돌, 쇠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추상화가 더욱 강해져 나중 작품일수록 인간의 형태에서 많이 벗어나 문자에 가까워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적인 작업은 판화이다. 전시장에는 그가 판화를 제작하는 데 사용한 판화원판들이 전시되어 있다. 표면의 요철을 떠내고 원판에 잉크를 발라 판화를 찍어낸 것이다. 조각과 마찬가지로 나무와 금속 등 여러 재료를 이용했다.

 

붙이고 긁고, 콜라주와 추상회화

 이응노는 콜라주 작업으로도 유명했다. 1959년 독일에 머무는 동안 이응노는 독일 카셀 지역에서 열리는 현대 미술 전시인 <도큐멘타>에서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추상이라는 개념을 수용하면서도 수묵화의 전통성을 살려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하고자 했다. 낡은 잡지를 찢어 붙이고, 색을 칠하고, 덧붙이고, 다시 칼로 긁어내어 역동성을 담아냈다. 특히, 1961년에 제작한 두 점의 <구성> 콜라주 작품은 흰색과 검은색이 먹의 농담처럼 표현되어 있는 동시에 종이 조각들의 입체감과 질감이 살아있다. 

 문자의 형상을 연상하는 추상 회화도 널리 알려졌다. 서예를 기반으로 기백이 느껴지는 획들이 자유롭고 거칠게 그의 작품들을 채우고 있다. 대전교도소 수감 시절에 만든 작품인 <구성>(1968)은 서예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람, 새, 상형문자를 변형시킨 듯한 형태들을 수묵으로 그려냈으며 추상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이응노의 추상회화들을 나란히 보다 보면 알 수 있는 특징이 바로 다양한 재료와 색의 사용이다. 흑백부터 형형색색의 작품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추상회화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여러 조각 작품에서 나타났듯, 재료와 표현 방식에 있어서 이응노의 끝없는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묵에 담은 염원, <군상> 연작

 이응노가 말년에 그린 <군상> 연작(1979-1989)은 그의 예술 세계가 집약적으로 담겨있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인간사에 대한 관심이 중심이 되었다. 작품 속 모든 문자와 형상들은 사람의 모양으로서 변주된 것이며 인간 문제를 상징하고 있었다. 그 절정이 바로 <군상> 연작이라 할 수 있다. 

 붓으로 서체를 쓰듯 수많은 인간의 모습을 전면에 나열하였다. 이응노는 <군상> 연작을 작업할 때 꼭 한 사람의 형태는 한 번의 붓질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붓의 힘이 반복되며 한 획마다 인간의 생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주목할 점은 넓은 화폭 위의 수많은 인간 형상 중 단 한 개도 겹치는 모양이나 자세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형상은 춤을 추는 듯하고 또 어떤 것은 시위를 하는 듯하다. 서로 손잡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군중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모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순수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고자 한 것이다. 

 이응노는 1970년대 후반의 <군상> 연작은 군무 위주로 군중의 모습을 표현했지만,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소식을 파리에서 접한 이후로는 역동적인 저항의 몸짓을 추가했다고 한다. <군상> 연작은 이응노가 자신의 작품 활동을 통해 단순히 동서양 예술의 형식적 융화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상을 소망했음을 보여준다. 

 

 전시의 제목 그대로 이번 전시에서는 이응노 화백의 대표작들이 즐비하다. 그의 예술 세계가 발전한 과정과 변모하게 된 기점을 중심으로 전시장에 작품들이 배치되어 그 흐름을 읽기가 쉬웠다. 평일 오후 2시와 오후 4시에는 각각 약 30분 간 도슨트의 해설이 있어 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이응노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이응노 마스터피스>와 동시에 대전 신세계 갤러리에서는 특별전 <이응노, 다시 만난 세계>가 지난달 4일부터 이달 27일까지 열린다. 이 특별전의 경우 과학기술을 접목하여 이응노 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응노 마스터피스>를 관람한 뒤 해당 특별전도 함께 관람한다면 이응노 예술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감상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장소 | 이응노미술관
기간 | 2022.10.04.~2022.12.18.
요금 | 어른 1000원 청소년, 어린이 600원 (문화가 있는 날 무료)
시간 | 10:00~18:00
해설 | 평일 14시, 16시 2회
휴관 | 1월 1일, 설날, 추석, 월요일
문의 | 042) 611-9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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