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레이 - 「프리가이」

(주)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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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그런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일주일을 준비해야 하는 일요일 밤. 아무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일요일 밤에는 진지하고 예술성 있는 영화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무겁기만 한 영화는 아무리 훌륭해도 일요일 밤의 심란함을 해소해 줄 수 없다. 그럴 때 선택해야 하는 영화는 무작정 재밌는 영화다. 단순하고 볼거리가 많지만, 마지막은 반드시 평화롭게 끝나야 한다.

 <프리가이>는 일요일 밤의 조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영화다. 주인공 ‘가이’는 폭력적인 롤플레잉 게임 ‘프리시티’ 속 배경 캐릭터 즉, NPC이다. 가이는 게임 회사의 비리를 캐고자 하는 유저 ‘몰로토프걸’을 짝사랑하며 자아를 갖게 되지만, 자신이 폭력적인 롤플레잉 게임의 소품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좌절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프리가이>는 <데드풀>의 착한 버전이라고 불릴 만큼 유쾌하고 가볍고 교훈적이기까지 하니 이후의 스토리는 영화를 1년에 한 편씩이라도 보는 사람이라면 모두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사건 해결을 위한 유일무이한 존재인 가이는 다른 NPC를 각성시킬 끝내주는 연설 후에 몇 번의 고비를 극복하고 악당을 몰아낸다.

 그렇다. 프리가이는 많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일요일 저녁에 딱 걸맞은 ‘킬링타임’용 영화다. 하지만 평소였으면 유쾌하게 보고 끝났을 영화가 지난 일요일에는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게 느껴졌다. 지루하도록 평안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답답한 NPC의 삶에서 느껴지는 이 기시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난 15일 SPC의 계열사 SPL 제빵 공장에서 20대 근로자가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이전에도 신문의 사건·사고란에서 제조업과 건설업에서의 산업재해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현장에 있던 동료들을 부품처럼 다룬 공장 관리자에 분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SPC 측에서 뒤늦은 사과라도 했을지 의문이다.

 나 역시도 같은 20대 여성이 당한 사고라고 해서 더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평소라면 끊임없이 쏟아지는 암울한 정보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귀를 닫았겠지만, 눈을 뜨고 보니 그런 모습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안온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프리가이>의 NPC 캐릭터를 옮겨 놓은 듯했다.

 게임 속 소품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가이는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고 이전의 평안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심지어 개발자들에 의해 강제로 포맷을 당해 기억을 잃기도 하지만, 한 번 눈을 뜬 가이는 더 이상 같은 말만 반복하는 NPC가 될 수 없다. 다른 NPC들을 설득해 게임 속에서 주어진 역할이 아닌 새로운 선택을 하게 만들고 NPC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렸기 때문에 기존의 세상에서 한 단계 발전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진부하다고 말할 결말이지만, 뻔한 결말이 때로는 옳은 결말이다. 현실에서도 일요일 밤의 영화처럼 뻔한 결말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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