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카이스트신문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학보사 기자가 되면, 그냥 학생으로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집장이 된 나는 애매하게 비어있던 13면을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다가, 한 면 전체를 인터뷰 코너로 만들었다. 코너명은 ‘Kaistian 엿보기’로, Kaistian 각자가 가진 특별함을 소개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웃기지만, 기자인 내가 낯을 많이 가리는 게 그 이유다. ‘Kaistian 엿보기’는 취재부의 다른 인터뷰와 달랐다. 한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물어보는 취지다 보니, 인터뷰이와 친해지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낯선 상황에 극도로 긴장하는 성격이다. 처음 만난 인터뷰이는 내가 어떤 말을 할지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나는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 일쑤였다. 더구나 편집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나간 내가 어리숙하게 보이면 어떡하나 싶어, 인터뷰를 할 때면 너무 불안했다. 그럴수록 인터뷰를 내가 계획한 대로 유도하고자 했다. 질문 리스트를 정해가서, 내가 듣고 싶은 만큼의 답변을 듣고, 다음 질문으로 빠르게 넘어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런 인터뷰는 Kaistian의 각기 다른 생생한 일상을 담고자 했던 기존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내가 계획했던 기사 흐름보다, 인터뷰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질문 취지와 다른 답변이더라도, 인터뷰이가 즐겁게 얘기한다면 그 이야기에 대해 더 들어보았다. 그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니까. 계획했던 질문의 양을 줄이고, 중간중간 인터뷰이의 말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질문으로 대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원하던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코너명이 ‘Kaistian 엿보기’인 만큼, 인터뷰이 모두에게 공통 질문으로 ‘당신에게 KAIST는 어떤 의미인가요?’를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답해본다. 다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나도 할 수 있다고 느꼈다. 모두 다른 곳을 향하지만, 그 반짝임과 당당함은 같았다. 예전에는 남들과 다른 곳을 향하면 불안했는데, 이제는 나만의 목적지에 대한 설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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