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운 사회부 기자
변성운 사회부 기자

“실천적 사랑, 그것은 노동이자 인내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완벽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는 인류애를 다짐할수록 역설적이게도 내 이웃들에 대한 사랑은 줄어드는 것 같다는 호흘라코바 부인의 말에 이렇게 답한다. 실천적 사랑과 그 대척점에 있는 공상적 사랑은 소설 내내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서 그 차이점이 강조된다. 이반 카라마조프는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난 단 이틀도 같은 방에서 어떤 사람하고든 함께 지낼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나는 하루만 지나면 그를 증오하게 된다.”고 말한다.

 사랑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반 카라마조프의 말마따나, 전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정확히는 사랑한다고 상상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쉽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물을 사랑해야 한다.” 등등… 범람하는 슬로건의 시대에서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공허한 사랑 속에서 살아간다. 

 휴가철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데 반려동물이 있을 때,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주인은 그의 사랑이 작은 동물의 무게보다 가벼웠음을 시인한다. 공상 속의 사랑이 약속한 황홀함과 달리, 실천해야 하는 사랑은 인내의 연속이기에 유기동물의 주인은 그 괴리에 놀라 잘못된 선택을 해버린 것이리라. 비극적인 점은 실천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책임을 반려동물 같은 약자가 져야 한다는 점이다. 

 SPC의 사업장에서 일어난 사고와 SPC의 대처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실천적 사랑에 대한 생각이 났다. “SPC 그룹은 언제나 최고의 맛, 즐거운 감동을 전하며 세상을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가겠습니다.” CEO의 인사말 마지막 문장이다. 언제나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쉬운 법이다.

 마더 테레사는 <한 번에 한 사람>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4만 2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돌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사람은 인류애를 먼저 배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면서 비로소 세계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주변부터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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