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철학자 피터 싱어가 출간한 <동물 해방>을 계기로 모든 동물이 존중받고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는 동물권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싱어의 책은 동물에 대한 잔혹 행위를 금지하는 범세계적 운동을 촉발했을 뿐 아니라, 동물 학대의 배후에 깔려 있는 종차별주의(Speciesism, 인간이 동물의 위계를 정하고 비인간을 차별하기 위해 고안한 신념 체계) 자체를 비판했다. 최근의 포스트 휴머니즘 담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 주체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며 인간 중심주의를 넘는 새로운 사유를 촉구한다. 비인간 주체란 동식물 뿐 아니라 사물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우리가 흔히 도구로 생각하고 대상화하는 사물마저 능동성을 가진 고유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물정치(Dingpolitik)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인간과 다른 종의 생명체, 나아가 인간과 사물 사이에 맺어진 동맹의 네트워크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일은 인간중심주의적 사유가 초래한 인류세의 위기를 넘는 급진적인 사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난 달 우리 학교에서 개최된 백로 관련 간담회는 캠퍼스 내에서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려는 유익한 시도이자 교육적인 실험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학내 백로 문제는 동남아 지역에서 겨울을 보낸 백로가 새끼를 낳기 위해 먹이가 풍부한 갑천 인근인 KAIST 기숙사 근처 녹지에 집단 서식지를 마련하며 불거졌다. 과거 농경 사회였다면 천연 비료를 생산하는 백로의 귀향을 반겼겠지만, 기숙사에서 조용하게 공부하고 쉬기 원했던 학생들에게는 백로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과 악취는 심각한 공해로 다가왔다. 이에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과 이에 대응하는 입장의 시설팀 외에도 백로와 생태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환경단체, 연구자가 한자리에 모여 백로 문제를 다각도로 논의하며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우리 학교에는 백로 외에도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함께한다. 먼저 학내 서열 1위로 통하며 KAIST의 마스코트로 사랑받는 거위가 있다. 거위 마크가 그려진 교통 표지판까지 마련되어 운전자들은 거위 가족이 뒤뚱거리며 도로를 일렬로 건너는 것을 인내심을 갖고 기꺼이 기다려준다. 캠퍼스는 길고양이들의 안전한 서식지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교내 길고양이들의 권리를 위해 동아리를 만들고 이들을 위한 급식과 중성화 사업을 지원하며 일상적인 돌봄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연구와 실험을 위해 수많은 동물이 사육되고 매매되고 죽어간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화학용품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동물이 희생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길고양이와 거위에 대한 돌봄과 배려만큼이나 실험동물에 대한 윤리적인 처우, 나아가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캠퍼스는 인간과 이종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공존을 연습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