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이후, 처음으로 외조부모님 댁에서 하루 자고 왔다. 명절이라도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쓴 채로, 잠시 있다가 돌아오는 것이 다였기 때문이다. 2년의 간격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집은 늘 같은 모습이다.

 할머니는 물건을 잘 버리지 않으신다. 같은 물건이 깨끗한 모습으로 십 년이 넘어가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은 깔개에는 크기가 다른 발자국 모양이 3개 그려져 있다. 내 발이 조금씩 자랄 때마다, 그 발자국 모양에 대 보곤 했었는데, 지금 보면 정말 조그맣다. 할머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할머니의 우엉 조림이라는 것을 알고 계셔서,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반찬 통 하나에 가득 담아 주신다. 올해의 다른 점이라면, 내 기숙사용 작은 우엉 조림 통이 하나 더 생겼다는 정도이다.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랑 자주 여행을 갔었다. 할아버지는 여행지가 어디든, 항상 근처 가게에서 콘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시는 할아버지가 생각하시기에,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어린 나도 아이스크림을 제일 좋아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여전히 아이인 줄 아신다. 첫 해외여행으로 형제자매분들이랑 호주를 가셨을 때는, 내 기념품으로 눈이 동그란 코알라 인형을 사 오셨다. 인형을 보고 내 생각이 나셨다는데… 나는 앙증맞은 코알라 인형을 가진 가장 행복한 20살이었다.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서 나는 명절만 되면, 성장기 어린이가 아님에도, 평소 먹는 양의 3배는 먹고 동글동글해져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할머니 집은 옛날 이층 주택이다. 오래전에 지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내가 작았을 때, 계단이 너무 무서워서 천천히 조심조심 오르면, 할머니는 겁이 많은 내 모습을 보고 웃곤 하셨다. 이번 추석 전에 할머니가 계단을 청소하시다가 미끄러지셔서 조금 다치셨다. 할머니 집은 그대로인데, 그 속에 살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부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슬펐다.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에서는 여전히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는 명절이 되기 전, 깨끗한 돈을 고이 접어, 나무 옷장 가장 구석에 소중히 넣어두셨다가 전해주신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게 조금씩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기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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