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문화부장
이지현 문화부장

 

 해보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편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아 남는 아쉬움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되지 않지만, 시도하고 얻은 실패는 어떤 형태로든 내게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던 새내기 시절, ‘애쉬’로 시작하는 염색 머리 스타일이 엄청나게 유행했다. 어렸을 때부터 붉거나 노란 계열의 갈색 염색이 스스로 안 어울린다 생각했던 나였기에, ‘애쉬’라는 미지의 영역은 찰떡같이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게 안겨주었다. 하지만 붉은 색소가 적은 애쉬 빛 머리를 위해서는 탈색이 꼭 필요했다. 세 차례의 탈색은 안 그래도 곱슬머리인 내 머릿결을 거하게 손상시켰다. 그것도 모르고 처음에는 푸른 빛, 회색 빛, 그리고 카키 빛의 다양한 머리색을 신나게 즐겼다. 색이 빠져 노란색이 되면 마음에 안 들어 매번 새롭게 염색을 반복한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머릿결과 내게는 염색 전의 자연스러운 머리색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결론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참담했다. 특히, 상한 머리와 새로 자란 머리 사이에는 눈에 띄는 경계가 생긴 것이 마음이 아팠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방법이 스크런치였다. 스크런치는 일명 ‘곱창 머리 끈’이라고도 부르는 두꺼운 머리 끈이다. 스크런치로 머리를 묶으면 경계도 덜 보이고 두툼한 천으로 부시시한 머리도 감싸준다. 손재주가 없어서인지 이미 머릿결이 말을 안 들어서인지 고데기도 안 먹던 참이라 스크런치는 참 고마운 존재였다. 이제는 꽤 시간이 지났고, 취향에 맞게 사둔 다양한 색과 재질의 스크런치가 있다. 그날 입은 옷 스타일이나 색상에 따라 스크런치를 고르는 재미도 있다. 

 사실 어떤 일이든 막다른 길 같아도 다시 새로운 길을 찾다 보면 결국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비단 머릿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길을 잃었지만 새롭게 발견한 맛집, 내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게 해준 손 안 가는 옷들, 아는 건 없어도 배우는 과목들이 재밌어 보여 결정했던 학과 등 이런 사소한 경험들이 쌓여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니 성공이나 실패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뭐든 남지 않을까 하는 믿음, 실패해도 내 손에는 나만의 스크런치가 쥐어져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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