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국내 SF소설은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전례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시작을 알린 작품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2020년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이듬해에 누적 20만 부라는 기록을 남겼다. SF 장르의 인기 속에서 천선란, 심너울, 이경희, 황모과 등 여러 신인 SF 작가가 탄생하기도 했다. 또한, 콘텐츠 플랫폼 ‘리디’에 따르면 리디에서 판매 중인 소설 전체 베스트셀러 100위 목록 중 국내 SF소설의 2020년도 판매액은 2019년도와 비교해 무려 4배 상승했다. 실제로 문학 출판시장에서 SF의 비중이 급격히 커진 것이다. 본 기사에서는 국내 SF소설이 오늘날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이처럼 크게 사랑받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내 최초의 SF소설

 한국 SF소설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윤성 작가의 <완전사회>는 한국 최초의 장편 SF소설로, SF와 추리라는 장르를 빌어 궁극적으로는 대중을 격려하고 현실의 부조리를 지적하였다. 국내 SF 장르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인 <완전사회>는 1965년도에 주간지 <주간한국>의 추리소설 장편 공모전에 당선되어 세상에 처음 나오게 됐다. 소설의 이야기는 인류가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고자 살아있는 인간을 타임캡슐로 만들어 미래로 보내면서 시작된다. 타임캡슐에 탑승한 주인공 남자는 161년 동안 잠자다가 여성만 존재하는 22세기 지구에서 깨어난다. 문 작가가 그리는 미래 세상은 뛰어난 과학 기술적 상상력은 물론, 상황 설정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는 인문 사회적 상상력에서도 그 세심함과 깊이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SF소설의 선구자로 불리는 문윤성 작가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20년에는 ‘문윤성 SF문학상’이 탄생했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하는 ‘문윤성 SF문학상’은 전자신문이 주최하고 아작 출판사가 주관하며 인터넷 서점 알라딘, 문윤성기념사업회, 콘텐츠 스튜디오 쇼박스, 커넥티드 콘텐츠 기업 리디가 후원한다. 총 5개 부문에서 올해 10월까지 작품을 공모 받고 수상작은 내년 1월에 발표 및 시상한다. 

 

한국 SF의 현재, 그리고 미래

 한국 문학계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SF 소설가였던 문 작가 이후 한국 SF소설은 긴 공백기를 거친다. 그리고 2000년 이후, 2세대 작가들과 함께 국내 문학계에 SF 장르가 다시 등장한다. 배명훈, 김보영 등으로 대표되는 2세대 SF소설 작가들은 치밀한 과학 지식을 강점으로 마니아층을 쌓아왔다. 배명훈 작가의 경우 다작으로도 유명하여 국내에서 기획된 SF 단편집에 거의 매번 등장할 정도이다. <타워> 등의 작품에서 현실 세계의 실제 문제들이 겹쳐 보이는 묘한 풍자에 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김보영 작가는 소설가가 되기 전에 게임 개발자로 일했다. 작품적 특징으로는 SF다운 경이감이 느껴지는 단편을 많이 써 팬들에게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불린다.

 2010년대 후반에 와서야 김초엽, 천선란, 심너울 등 3세대 SF 작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소외계층, 환경, 차별 등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들로 한국 SF 소설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스타 작가들의 대거 탄생은 현재의 SF 열풍에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신인 작가들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과학문학상이 있었다. 한국과학문학상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는 머니투데이가, 2021년부터는 허블 출판사가 주최하는 SF 분야 신인문학상이다. 제2회를 수상한 김초엽 작가와 제4회를 수상한 천선란 작가 등 수많은 신예 작가를 배출해냈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하며 허블 출판사와 스튜디오드래곤이 함께 응모작을 공개 모집 중이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영상 콘텐츠 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이 함께하여 한국 SF가 영화 및 드라마로도 확장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수상작은 허블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스튜디오드래곤에서 영상화를 검토한다. 

 SF소설의 영상화는 대중의 주목을 발판 삼아 이미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 <SF8>은 <하얀 까마귀>, <증강 콩깍지>, <우주인 조안> 등 한국 SF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여덟 개의 SF 장르 단편작으로 구성되어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와 풍성한 내용이 좋은 평을 받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김초엽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지구 끝의 온실>이 드라마로 제작된다. 지난 2월 김 작가의 소속사 블러썸 크리에이티브는 <사랑의 불시착>, <스위트홈>, <빈센조> 등을 제작한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과 영상화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김 작가 외에도 천선란, 심너울, 이경희, 황모과 작가들의 소설들은 다수가 영상화가 이루어졌거나 영상화 판권이 팔린 상태이다. 

 서울SF아카이브의 박상준 대표는 제2회 성균 국제 문화연구 연례 포럼에서 SF 열풍에 대해 “새로운 SF 독자층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기존 주류 소설 독자들이 SF에 눈을 떴다고 본다”며 “전체 파이의 크기가 커진 걸로 보기에는 좀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내 SF 문학 열풍의 원인으로 “점점 가속되는 과학기술의 변화 속도에 태어날 때부터 익숙한 세대가 독자층으로 등장했다”며 문화인류학적인 변화와 더불어 여러 스타 작가의 탄생을 꼽았다. 또한 한국 SF 문학의 전망에 대해서는 “한국 SF 문학은 과학적 상상력보다도 윤리적 상상력을 다양하게 실험하는 거대한 현장으로 역할 할 것이다”라며 한국 SF문학이 공상과학소설(science fiction)을 넘어 좀 더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사변 소설*(speculative fiction)의 영역도 함께 하고 있음을 짚었다. 
 
 

SF 문학의 매력속으로

 심너울 작가는 리디와의 인터뷰에서 SF의 매력에 대해 “광학 현미경 같다. 세상을 왜곡하여 평소 보기 힘들었거나 당연히 여겼던 걸 인식하게 하는 유용하고 재밌는 도구이다”라며 SF적 상상력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을 들었다. 김초엽 작가 또한 KBS와의 인터뷰에서 SF만의 매력에 관해 묻자 “세계를 바꿔볼 수 있다는 거. 인간이나 세계 자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SF는 과학 기술에 대한 상상에서 멈추지 않고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상상까지 나아가는 장르이다. SF적 요소가 현대 사회에서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과 만났을 때, 독자들은 작가가 이끄는 새로운 세계에 쉽게 설득되고 몰입할 수 있다. 그 매력을 여러 작가가 잘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으며, 동시에 많은 독자가 그에 주목하면서 시너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국내 SF 문학의 무궁무진한 변주와 발전이 있길 기대해본다.

 

사변 소설*
고전적인 가정을 문제로 제시하고 그 문제를 푸는 시도를 담는 소설의 한 갈래. 과학 소설의 일종이나, 과학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현대인의 사고의 틀을 넓히는 데 중점을 두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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