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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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  ‘문명특급’  등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을 보면 어쩌면 저렇게 말을 잘할까 싶다. 그들은 짧은 시간 안에 게스트들과 쉽게 친해지고, 낯선 공간을 편하게 느끼게 해준다. 편한 분위기에서의 대화는 대중들이 잘 몰랐던 게스트들의 진실된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렇게 상대의 깊은 면까지 엿볼 수 있는 말의 힘은 엄청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능 프로 진행자들과 같이 말을 잘하고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말이 잘 통할 수 있을까? 대화(對話)는  “대할 대” 에  “말씀 화” 를 사용한다. 즉, 마주 대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음을 말한다. 각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면 집단적 독백과 다를 게 없어져버린다. 서로가 소통의 속도를 맞춰가야 하는 것이다. 

그라이스의 대화 격률

 대화의 원리를 먼저 이해해야 올바르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영국의 언어 철학자, 허버트 폴 그라이스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지켜져야 하는 네 가지 대전제를 제안했다. 이는 ‘그라이스의 대화 격률’이라 하며, 첫 번째는 ‘질의 격률’이다. 진실한 내용을 말하라는 뜻으로, 거짓이라고 믿는 것과 적절한 증거가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필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지 말라는 ‘양의 격률’이 있다. 예시로, 밥을 맛있게 먹었냐는 질문에 “맛있게 먹었어. 근데 어제 내가 진짜 예쁜 곳 발견했어”라고 답한다면 양의 격률을 어긴 것이다. 세 번째인 ‘관련성의 격률’은 적합한 말을 하는 것이다. 질문에 관련 있는 답을 하지 않고 다른 말을 한다면 관련성의 격률을 어기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간결하고 조리 있게 말하라는 ‘태도의 격률’이다. 애매하거나 중의성이 있는 답보다 명료하게 답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무엇을 할지 묻는 질문에 “아무거나 상관없어, 근데 지금 배가 고프진 않네, 아무거나 먹자”라는 식으로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말의 뜻이 겉으로 드러난 그대로가 아닌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말을 듣지 않는 자녀에게 하는 “잘한다, 아주 잘해”라는 말은 진짜 잘한다는 뜻이 아닌, 그만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숨겨져 있는 뜻을 ‘함의’라 한다. 그라이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위 네 가지 대화 격률을 지키며 대화를 이끌어가도록 ‘협동’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격률을 항상 지키지는 않으며 일부러 위반하기도 하는데, 이때 청자가 이를 깨닫고 그 말에 어떤 함의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대화는 집 짓기와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타인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심리학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의 작가 류쉬안은 대화의 과정을 집 짓기에 비유해 총 네 단계로 설명했다. 대화하는 상대와 함께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지형이 적합한 환경인지 확인해보는 것처럼, 대화의 시작에도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문명특급’의 재재는 남다른 정보 수집 능력으로도 유명하다. 게스트들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얘기해 게스트 본인들도 깜짝 놀란 적도 많으며, 심지어 이를 잘 따라하기도 한다. 이처럼 실생활에서도 누군가를 처음 만나기 전에 그에 대한 정보를 얻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와 공통된 친구나, 그의 취미 등을 알아가면 대화를 시작하기 쉽다. 상대의 근황을 조금이라도 알아가 그에 대해 질문을 하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지형을 조사하고 난 후에는 지반을 다져야 한다. 서로의 간단한 정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둘 사이의 어색한 기류를 풀었을 것이다. 이제는 상대에 대한 정보보다 반응과 호응이 중요하다. 말이 ‘통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날씨 얘기처럼 시시한 말도 괜찮다. 오히려 이런 상투적인 인삿말이 부담 없이 호감을 끌어낼 수 있다. 상대의 사적인 면을 파고드는 것보다는 친근감을 먼저 형성하는 것이 좋다. 상대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 표정이나 몸짓, 손짓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함께 호흡하면 상대도 더 잘 말할 수 있다. 

 이제 건물을 지을 차례다. 처음부터 진지한 얘기를 하려고 하면 상대는 불편해할 수도 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한테 마음속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집을 지을 때처럼 저층부터 고층까지 하나하나 올라가야 한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상대의 재밌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다. 가끔 자신의 이야기에 자신 없어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때는 적절한 질문과 반응이 중요하다. 그러나 상대가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 그가 익숙해지도록 시간을 줄 수도 있다.

 마지막 단계는 마음의 다락방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는 상대와 편하게 있을 수 있고, 단둘이 있는 것 마냥 느낄 수 있다. 상대의 다락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대와 함께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개성과 가치관에 따라 토론의 기반을 찾아내 질문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그 사람이 알아봐 줬으면 하는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항상 분위기를 즐겁고 밝게 만들어주는 친구에게 연약한 부분을 봤다면, 그 부분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의 이영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게스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을 알아봐 준다. 이러한 부분들이 게스트가 편하게 느끼고, 깊은 속마음을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는 진짜 나를 봐주었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상대의 다락방 문을 열려고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락방도 제때 열어야 한다.

 

대화는 서로 듣는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화에는 질문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경청’이 굉장히 중요한데, 상대에게 질문을 해놓고 그의 말을 끊는다면, 이야기의 흐름이 끊길뿐더러 상대는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상대의 말에 너무 공감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도 흔하다. 예를 들어, 과제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나도 과제를 너무 많이 받아서 힘들어”라며 왜 힘든지 주제를 빼앗아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상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 힘들 것이며, 본인의 이야기가 그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수단이라 느낄 것이다. 

 나아가, 청자의 의도대로 성급하게 해석하면 안 된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상대의 말을 듣고 어림잡아 결론을 내버리면, 상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명쾌하지 않다면 질문을 통해 확인하면 된다. 좋은 질문은 좋은 이야기를 만든다. 결론을 내는 것보다 질문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류쉬안은 이렇게 말했다. “말하는 사람은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듣는 사람은 상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은 대화이다.”

 

 SNS가 발달한 요즘, 우리는 더 많은 사람과 쉽게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은 관계를 만드는 것은 오히려 힘들어졌다. 대화는 타인의 다락방에 들어가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개별적 존재인 인간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존재가 된다. 만약 사람이 혼자서도 살 수 있다면, 대화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고,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타인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깊은 관계를 나누고 싶은 사람과 마치 집을 짓는 것처럼 차근히 대화해보자. 상대의 다락방을 열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본인의 다락방도 열어준다면, 서로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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