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준 학우 제공
최현준 학우 제공

 지난해 7월, 우리 학교 수학과 학부생이 생로랑(SAINT LAURE-NT) 2022 봄여름 맨즈 웨어 컬렉션에 한국 남자 모델 최초로 데뷔했다는 소식은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다. 우리 학교 출신으로 생소한 분야, 그리고 그 분야에서의 화려한 데뷔는 궁금증과 의아함을 동반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학교로 복학한 최현준 학우(수리과학과 18)를 만나 자신의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자유롭지만 견고하게 나아가는 그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3학년까지 학교 다니다가 휴학하고 이번 가을 학기에 복학하게 되는 최현준입니다.

 

모델 일과 병행하기가 힘들어서, 처음으로 1년간 휴학을 택했다고 들었다.

 굉장히 알차게 보낸 1년인 것 같다. 계속 휴학하고 30살쯤에 돌아올까 고민하다가 마냥 미룰 일은 아닌 것 같아, 바로 복학하게 되었다. 

 

앞으로 졸업 전까지 계속 학교에 있을 예정인지?

 겨울 시즌 때는 외국에 나가 있어야 해서, 한 학기 다니고, 한 학기 쉬는 것을 반복할 것 같다. 여름 시즌에는 5~6월에 출국해야 해서, 기말고사 기간이랑 겹쳐서 학교에 다니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가을 학기에 복학하게 되었다.

 이번 학기에는 15학점을 듣는다. 일도 병행할 예정이다. 서울에 촬영이 있을 때마다 서울로 간다고 회사랑 약속하고 복학했다. 높은 학점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빠르게 졸업할 것인지에 대해서 갈등했었는데, 다들 정말 열심히 하는 우리 학교의 특성상 학업과 일을 완벽히 병행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이제는 조금 학업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지금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모델 일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의 최선을 다하고 싶다.

 

처음 패션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인가?

 옷을 독특하게 입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때는 마냥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친구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봤는데, 어느새 거기에 빠져서 친구가 입는 옷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학생이 사기에는 너무 고가의 브랜드여서, 관심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모델이 되면 돈을 받고, 더구나 가장 먼저 디자이너의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모델에 눈길이 갔던 것 같다. 그게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날 때쯤이다.

 

좋아하는 일이 다양한 것 같다. 패션도, 피아노도, TED 연단에서 요요를 하는 영상도 보았다. 그중에서 패션은 다른 좋아하는 것들과 달리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패션은 두 가지 면에서 재밌다. 먼저 패션이 가진 즉흥성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나 다른 것들은 계획을 수립해서 체계적으로 그것을 해 나가고 결론적으로 어떤 바람직한 결과를 내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패션은 하나의 표현 방식이다. 한 사람이 같은 스타일을 계속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매번 다른 나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반대로, 디자이너가 이걸 왜 만들었을까 생각해보는 과정은 국어 지문 해석하는 것 같다. 공부랑 유사한 면이 있는 것도 흥미롭다. 

 

친구 일을 도와주다가 모델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2년 전에, 친구가 재미로 브랜드를 하나 만들었다. 친구도 처음 하다 보니까 예산상 전문 모델을 쓰기에는 부담스러웠고, 나도 경험해보고 싶어서 모델로 촬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화보가 잘 나와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그걸 본 런던 에이전시에서 연락을 주셨다. 

 

전문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는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다. 예술가가 되어야만 하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최현준을 모델로 만든 단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모델 일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민이나 후회도 없었다. 우리 학교를 다닌 3년 동안의 내 행동만 돌아봐도, 내가 이것을 꾸준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공부하다가 힘들면 기숙사에 와서 패션쇼 틀어놓고 보고, 화려한 옷에 빠졌을 때는 다른 사람 핀잔에 상관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대로 입고 다녔다. 가장 확실히 ‘이게 천직이구나’ 느꼈을 때는, 모델이 런웨이에서 걸어 나오는 영상을 보다가 마치 내가 걷고 있는 느낌을 받았을 때이다. 단지 모델의 영상을 보는 건데도, 나도 저렇게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모델과 같은 감정선을 공유한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생로랑 데뷔 쇼에 섰을 때다. 한국인 남성 모델 최초라는 그런 영예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정말 영광스러웠다. 그때도 이상하게 하나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패션쇼를 보았던 기억 때문에, 데뷔 쇼에서도 그냥 원래 하던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긴장하지 않고 그 시간을 진심으로 즐겼던 것 같다.

 

타 인터뷰에서 모델 일에 대한 불안감이 고민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듣고 보니, 모델 일에 대한 애정이 불안감을 압도할 정도로 큰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아니었다. 쟁쟁한 사람들 속에서 나를 써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모델 산업이라는 게 어떤 새로운 사람이 나올지 모르고, 그 사람이 나보다 괜찮으면 바로 대체되는 것이니까. 외적으로 굉장히 냉정한 산업이다. 그래서 불안한 게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기에, 여러 선택의 순간들이 많을 것 같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때마다 어떤 기준을 중요하게 고려하는지?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 굉장히 단순하지만, 나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생계유지가 되는 한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물론 모델로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 일이 불안정한 것도 맞다. 그래서 일이 끊기는 상황을 대비해서, 지금도 고정 수입을 위해 학생들을 계속 가르치고 있다. 전문적으로 과외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적어도 불안하지는 않다. 이렇게 플랜 B, C들을 만들어 놓아야,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추구할 수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모두 열심히 하는 것도, 그런 다양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인지?

 맞다. 나는 편견이 없는 사람이다. 내일 당장 모델을 그만둘 수도 있고, 내가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고 하고 싶으면 계속하는 거다. 학생들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계속하고 싶다. 재밌는 게 생기면, 단순히 흥미로운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주면서 진심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들에 노력을 쏟으며 사는 것이 나만의 방식이다.

 

나에게 KAIST란? 

 나에게 KAIST는 애증의 존재다. 너무 힘들게 내 고등학교 3년을 바쳐서 준비할 때는 미운 존재였는데, 여기에 와서 좋은 일들이 정말 많았다. 지금 저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도 KAIST가 크기 때문에, 애증의 관계다. 

 

돌이켜 보았을 때, 학교에서 배운 것이나 느낀 것 중 가장 쓸모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거리낌 없고 가벼울 것이라고 안 좋게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있다. 반면 내가 KAIST에 다녔다고 하면, 다들 ‘이 사람은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이구나’라고 믿어주시는 것 같다. 

 또 하나는 수리과학과로 3년 동안 있으면서, 수학과만의 생각의 방식을 체화한 것이다. 논리적으로 뭐가 맞고 그른지 따져가며 생각하는 체계적인 사고방식을 말한다. 어떤 행동을 하고 선택할 때, 수학과의 사고방식으로 다방면으로 고려하며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도움이 된다.

 

모델로서의 목표는?

 모델로서의 목표는 매우 높은데, 나중에 모델 최현준이라고 하면, "저런 멋있는 친구가 있었구나!"하고 다들 입 모아서 얘기할 수 있는, 그냥 반박 불가 일인자가 되고 싶다. 아직 신인으로서 가지기엔 너무 큰 포부인 것 같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큰 목표를 가지는 것은 한 사람의 도약을 도와준다고 믿는 편이다.

 모델은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영구적인 클라이언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되게 멋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모델들에 비해 내가 어떤 차별성을 둘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클라이언트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식으로 내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한다. 특히 이번 겨울 시즌에는 다양한 쇼에 서고 싶다. 이번에 장발에서 짧은 머리로 바꾸고, 체형도 바꿨다. 여러 쇼에서 여러 디자이너를 통해서 나의 다양한 모습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다.

 

요즘 가장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나는 일하는 게 제일 행복하다. 이틀 전에도 촬영했는데, 나는 일할 때마다 오히려 나의 고갈된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작은 촬영이든 광고든 큰 촬영이든, 누가 나를 불러서 촬영할 때에, 내 내면의 끼를 계속 방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게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롭게 만나게 될 학우분들께 친하게 지내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최현준 학우 제공
최현준 학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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