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되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자기소개다. 더욱이 산업디자인학과에서는 보통 첫 주차 과제로 그 과목과 연관된 자기소개 과제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진 기법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self-portrait을 찍는 것처럼 말이다. 자기소개는 학기 초의 설렘을 느끼게도 하지만, 잊고 지냈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다.

 이름과 학과, 동아리를 말하니까 더 할 말이 없어졌다. 말이나 글 실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작가도 책 앞 날개의 작가 소개를 어려워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장강명 작가는 칼럼에서, 첫 책의 작가 소개를 적을 때 느낀 부담스러움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바람이 많이 불던 날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눈 감는 날까지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런 문구를 적게 되나 보다. 나는 색소폰을 불고 마라톤을 몇 번 완주했다, 이런 이야기까지 적었다.”

 메모장을 켠다. 나에 대해 쭉 적는다. “나의 전공은 산업디자인학과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와 같이 ‘나’로 시작되는 문장들을 심리학에서는 자기개념이라고 한다. 책 <정체성의 심리학>에서는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자기개념, 정체성, 서사 정체성으로 확장하여 설명한다. 자기개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징에 대한 단순 나열이다. 고뇌의 과정을 거쳐, 자기개념 간의 우선순위가 생기고, 융합이 이루어지면 정체성이 형성된다. 디자인과 글 중에서 내 진로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혹은 두 가지를 함께 할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내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체성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다 묘사할 수는 없다. ‘이야기하는 인간(8면 <우리, 이야기합시다!> 참조)’은 자신의 정체성도 ‘이야기’를 통해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인생에서의 결정적인 경험, 그것의 의미와 그것으로부터 형성된 나의 모습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스스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자기소개는 어렵고, ‘나는 누구인가’는 매우 까다로운 질문이다. 하지만 이왕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면, 나만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조금 더 깊게 질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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