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는 학교 체육시간 피구를 자주 했다. 매번 무작위로 편을 나누었, 분필가루인지 밀가루인지 알 수 없는 삭막하게 하얀 가루로 친구들 사이를 갈라 선을 그었. 넓은 운동장 속에 좁은 틀을 만들었다. 밟아서도, 넘어가서도 안 되고, 그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좁은 틀이었다. 하루는 피구 경기가 너무 과열된 나머지, 그것이 패싸움으로 변질되었다. 싸움의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별것 아닌 것이었다. 일단 한 번 불이 붙고 나니 체육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서도 신경전은 끊이지 않았다. 고작 한 시간 피구 경기를 했을 뿐인데 우연히 같은 편이 된 친구들과는 뭔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고 다른 편이 된 친구들에게는 이유 없는 적대감을 느꼈다.

 인간은 분류라는 방법을 통해 무언가를 더 쉽게 인식하거나 기억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세상을 더 편리하게 보고 분석하기 위한 시스템(스키마)에 의한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볼 때에도 이 시스템이 작동한다. 때로는 더 간편한 분류를 위해 왜곡하여 인식하기도 한다. 비슷해 보일 수는 있어도 분명히 다른 것을 그냥 같다고 생각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모르는 정보에 대해서 멋대로 예측하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틀이 만들어지고, 정해진 틀에 들어맞지 않는 행동을 보이거나 특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비정상”으로 낙인찍어버리기도 한다.

 분류를 하기 위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는 사회가 알려주는 기준을 채택한다. 어렸을 때부터 미디어를 통해, 그리고 주변 어른들을 통해 학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별, 인종, 장애, 출신 국가, 나이 등이 그것이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인식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그 분류를 바탕으로 인식하게 된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우리”에 속해야만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그들”에게는 이유 없는 적대감을 느끼고, 심지어는 그 적대감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게 되기도 한다.

 분류를 하면 그에 따라 여러 하위 그룹이 생성된다. 많은 경우에 인간은 본인이 어떤 하위 그룹에 속할 것인지를 스스로 정할 수 없다. 분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하위 그룹 간에는 위계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기준들을 포함하여 사회가 제공하는 많은 기준들은 그 그룹들 간의 위계를 만든다. 사람분류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람을 위계가 있는 하위 그룹들로 나어서는 안 된다. 위계가 없는 하위 그룹들로 나는 것도 위험하다. 언제 어떻게 이 사회가 그 그룹들에게 위계를 부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완벽하게 보장할 수는 없지만, 영원히 위계가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 하위 그룹들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을 딱 나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의 특성은 그렇게 무 자르듯이 똑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어느 날은 이런 특성을 가지기도 하고 다른 날은 다른 특성을 가지기도 한다. 또한 사람은 무수히 많은 특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고작 몇 개의 기준으로 나뉜 그룹으로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절대 설명할 수 없다.

 열 개의 기준, 백 개의 기준으로 사람을 나눈다고 해도, 아니 만 개의 동그라미로 벤 다이어그램을 그려 나눈다고 해도 그래서는 안 된다. 나의 바람은 벤 다이어그램의 동그라미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하나의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도 아니다. 나의 바람은 그냥 그 동그라미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다. 삭막한 하얀 가루로 그려낸, 밟아서도 안 되고 넘어가서도 안 되는 그 좁은 틀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뇌가 다른 사람들을 재고 추측하고 분류하는 것은 우리 뇌의 빠른 정보 처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 뇌가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정상”과 “비정상”을, “주류”와 “비주류”를, “우리”와 “그들”을 가르지 않을 필요가 있다. 더 크고 힘 있는 집단에 속했다고 해서 무의미한 우월감이나 소속감을 느끼지 않고, 더 작고 힘없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 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근거 없는 타박을 하거나 그들을 지워버리지 않을 필요가 있다. 애초에 우리의 뇌가 하는 분류는 정말이지 기계적이고 의미 없는 분류로 남겨놓고 어떤 사람을 대할 때에는 그 사람에 대한 얄팍한 정보(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얄팍할 수밖에 없.)로 아무런 평가나 판단을 하지 않고 대할 필요가 있다.

 감성적인 이야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분류의 의미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제적, 혹은 그 어떠한 측면에서의 위계도 함께 없어져야 할 텐데 그것들이 단번에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운이 좋아 힘 있는 부류에 포함된 자들이 놓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목소리가 모이고 행동이 쌓여야만 언젠간 모두가 각자 원하는 모습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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