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했던 일들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면 괜히 도피성 창작욕이 불타오른다. 그렇게 최근 몇 개월, 상당히 많은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보냈지만, 그마저 마음대로 해소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나는 언제 글을 열심히 썼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깜깜한 때였던 것 같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가라앉았다가 잠깐 올라와 글자들을 곱씹었다. 당시 오르기 위해 썼는지, 쓰기 위해 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숨이 가빴다. 나는 이럴 때 주제가 되어 준 당신들이 고마웠다. 더 깊게 가라앉지 않도록 붙잡아준 그 목소리들. 보이지 않는 마음이래도 들렸으니 괜찮았다. 나에게 글은 그런 거였다. 의무가 아닌 일로 자신을 종용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해 볼 만하다.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을 찬찬히 돌이켜보는 과정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버릴 수 없는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가 느끼는 편안함의 원천은 조용한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을 볼 때 경외심을 느낀다면, 진득하고 여유로운 집념은 아름답다. 그럼에도 자신이 꾸준히 몸담을 수 있는 적당한 온기야말로 가장 아늑한 쉼터일 테다. 사람마다 어울리는 적당한 온도는 다른 법이다. 뜨거운 게 매력인 사람도, 차가운 게 매력인 사람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미지근한 사람이라고 정의한 나는, 그런 비슷한 온도를 가진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주변엔 언제나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가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친구를 생성해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는 성정 또한 아니라서 기회는 충분했다. 게다가 미지근한 사람은 본인과 비슷한 인간을 곧잘 찾아내곤 한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오랜 시간을 가지고, 그 시간 동안 나만의 온도를 잃지 않기 위해 충분한 에너지를 쓴다. 내가 너에게서 행복을 얻듯 너도 나에게서 온기를 얻어갈 수 있도록. 

 왜 항상 답이 없는 고민은 머리 위를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할까. 고르고 고르고 골라도 여전히 쫓아오는 선택지들은 인생을 나조차 모르는 길로 인도하고 있다. 내 인생인데! 서러운 것도 잠시, 원래 그런 거란걸 깨닫고 난 뒤로는 그 길을 좀 더 행복하게 살 방안을 떠올리는 중이다. 혼자라도 괜찮지만 여럿이면 거뜬하다. 끝없는 기다림이든 무모한 모험이든 상관이 없다. 끝이 있다면 그것 또한 받아들이리. 내가 걷는 이 길 위에는 마찬가지로 묵묵히 걷는 네가 있으니 정말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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