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과일 가게에 들른다.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아삭한 복숭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천도복숭아를 시작으로 좌판에 다양한 복숭아가 등장하고, 나는 마치 신상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설레며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다. 뜨거운 날씨에 지칠 때도 있지만 그만큼 생동감 넘치는 여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다. 한 입 베어 문 복숭아의 과즙, 더운 날씨를 식혀주는 시원한 소나기. 비가 그치면 더욱 무성해지는 초록빛이 좋다.

 그러나 이런 여름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폭염은 갈수록 잔혹해지고, 시원한 여름비는 홍수로 모습을 바꿔 간다. 유럽은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포르투갈에서는 기온이 최고 47도까지 올라가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659명에 이르렀다. 폭염에 태풍처럼 이름을 붙이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어느새 ‘이례적인 폭염’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유럽에서 탄소 배출의 결과는 폭염으로 돌아왔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폭우와 홍수로 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기상청은 60년 뒤 국내 폭우 강수량이 70%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후 변화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작물 생산이다. 더 이상 여름 복숭아를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농촌진흥청의 ‘작물별 재배지 변동 예측 지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복숭아의 재배 가능지 면적은 2050년대부터 줄고, 2090년대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 혹은 산간지에서만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할머니가 된 나는, 변함없이 과일 가게를 기웃거릴 테지만, 더 이상 국내산 복숭아를 맛볼 수 없을 수도 있겠다.

 기후 위기를 비튼 블랙코미디 영화 <Don’t Look Up>을 본 적이 있다. 과학자는 지구로 돌진하는 혜성을 발견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혜성이 지구에서 맨눈으로 보일 정도가 되어도, 사람들은 혜성의 위험성을 인정하는 Look up 파와 인정하지 않는 Don’t look up 파로 나뉘어 싸우기에 바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를 목도하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지난달 18일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페터스베르크 기후회담에 보내는 영상메시지에서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다. 집단행동(공동 대응) 또는 집단자살,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